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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교수의 부재를 안타까와 하는 실천적 지식인 전강수교수님의 고언

동숭동지킴이 2018. 11. 14. 14:39

'기본소득 연계 국토보유세' 공약 탄생사를 기록하는 이유 


프레시안 2018.11.14 09:56:03



[기고] 이재명은 명민했으나, 캠프는...
고 김기원 교수가 생각나는 시절

벌써 고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의 4주기가 다가온다. 그는 내게 캄캄한 길에서 갈 길을 보여주는 별과 같았던 선배였다. 어떤 어려운 문제도 그와 상의하면 답이 나왔다. 김 교수는 스스로 정치권에서 어떤 자리도 맡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그것을 공언했지만, 한국 경제를 개혁할 깔끔한 정책 방안을 개발해서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에게 제안하는 일에는 누구보다도 앞장섰다.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엉뚱한 길로 갈 때는 가차 없이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김 교수만큼 깨끗하고 능력 있는 실천적 지식인이 또 나올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부'의 소임을 망각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요즘, 그의 부재가 더 크게 다가온다. 생전에 김기원 교수는, 정치권이나 정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경험한 내용을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서 후속 세대에게 살아 있는 교훈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글에서 나는 요즘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강조하는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의 탄생 비사를 밝히는 동시에 나의 정치권 참여 경험을 나누고자 하는데, 이는 김기원 교수의 유훈을 따른다는 의미가 있다.

토지주택·기본소득 위원회를 회고한다

토지정의 운동과 부동산 값 상승은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는지도 모른다. 2014년 하반기부터 수도권의 부동산 값이 오르면서,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식어버린 헨리 조지의 토지공개념 사상과 토지정의 운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것이 폭발적인 관심으로 발전한 것은 2017년 대선 시기였다. 수도권의 부동산 시장은 다시 불붙고 있었다. '부동산 규제 완화의 종결판'을 시전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초이노믹스'가 마음껏 위력을 발휘하던 때였다.

2017년 대선 때 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예비후보 캠프에 참여했다. 거기서 나는 토지주택·기본소득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서 부동산과 기본소득 관련 공약을 만들었다. 누군가 내게 "당신은 어째서 안 되는 쪽에 줄을 서는 거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 말이 사실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재명 후보 측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그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괜찮은 정치인 같아 보이는데 아무도 도우려고 하지 않으니, 나라도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캠프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2016년 10월 21일 아침 정책 캠프 구성원 몇 사람과 함께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을 처음 만났다. 모임 서두에 그는 참석자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일종의 '발제'를 했다. 그는 짧은 시간에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을 정도로 무척 명민했다. 그 후 2017년 4월 3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마무리될 때까지 제법 긴 기간 동안 나는 이재명 후보를 도왔다.

그때 토지주택·기본소득위원회에서 나와 함께 공약을 작성했던 사람은 한신대 강남훈 교수와 시민운동가 두 사람이었다. 토지주택·기본소득위원회가 작성한 공약 중에는 국토보유세·기본소득·지역상품권을 '3종 세트'로 결합하여 부동산 투기 근절, 불평등 완화,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 공약은 이재명 후보를 대표하는 브랜드 공약으로 인정되어 당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 외에도 우리 위원회는 경북대 김윤상 명예교수가 처음 제안한 부동산 백지신탁제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 이재명 후보의 공약으로 발표했다. 또 출산 후 3년이 경과하지 않은 무주택 세대를 대상으로 '아기사랑주택'을 5년간 30만 호 공급하고, 장기 공공임대주택 공급 목표를 높여서 2022년 말까지 장기 공공임대주택 재고 비율 8퍼센트를 달성하겠다는 주거복지 공약도 함께 발표했다.

명민했던 이재명, 허술했던 정책 캠프

이재명 캠프의 초기 상황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정책 캠프 좌장을 맡았던 인사는 대선 캠프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고, 그와 개인적으로 친하다는 사연으로 캠프에 미리 합류한 몇 사람은 이재명 후보를 앞에 두고 철학과 사상을 논하는 '학술' 토론으로 세월을 허비하려 했다. 내가 보기에, 그런 인물들을 조력자로 둔 이재명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위협할 정도까지 급성장한 것은 순전히 그 개인의 뛰어난 역량 때문이었다.

이재명 후보가 촛불시위에서 명연설을 토해내면서 지지율이 급등하자 캠프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진정으로 이재명 정신에 공감해서 찾아온 사람은 소수인 듯했다. 텔레그램에 마련한 캠프 단체 대화방은 정책을 연마하는 토론의 장이 아니라, 인정투쟁에 몰두하는 군상들이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시장터와도 같아 보였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정책 캠프가 그렇게 허술했던 덕분에, 오히려 나는 평소에 신봉하던 정책을 우리 사회에 마구 알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 이재명은 하늘이 내게 맡긴 '대형 스피커'였던 셈이다.

나는 국토보유세를 15.5조 원 걷어서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토지배당으로 연 30만 원을 지급하는 공약이 한국 사회에서 평등지권(平等地權)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라 믿는다. 기존 종합부동산세로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부닥칠 현실적인 문제가 너무 많다.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를 도입하면, 부동산 투기 근절, 평등지권 보장, 불평등 완화, 경제 활력 제고 등 긴절한 사회적 과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이미 2008년부터 국토보유세를 제안해 두고 있었지만, 그것을 기본소득과 연계해서 구체적인 정책 공약으로 만드는 데는 '기본소득 전도사' 강남훈 교수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사실 토지배당이라는 용어는 그의 작품이다. 강 교수는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청년배당을 소개하고 그것을 성남시에서 실제 정책으로 실행하게 만든 뛰어난 경제학자이자, 내게는 학교 선배이다. 강남훈 교수는 국토보유세를 걷어서 토지배당을 지급할 경우 전체 가구의 몇 퍼센트가 순수혜 가구가 되는지를 예측하기 위해 시뮬레이션 작업을 수행했는데, 예상 외로 94퍼센트가 순수혜 가구가 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만일 그때 강 교수가 그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게 보여주지 않았다면, 나는 이재명 후보에게 국토보유세를 걷어서 기본소득으로 지급하자는 공약을 선뜻 내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에 기본소득 공약의 필요성을 언급했더니, 캠프에 먼저 합류해 있던 몇몇 자칭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극구 반대했다. '수당이면 되지 무슨 기본소득?'이라는 게 그들의 반응이었다. 정책 좌장도 심드렁한 태도로 내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안팎에서 더 강하게 기본소득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압박을 가했다.

나는 원래 토지주택위원회였던 위원회 이름을 아예 토지주택·기본소득위원회로 바꾸고 기본소득 공약까지 자원해서 떠맡았다. 하지만 공약으로 최종 발표하기까지는 어려움이 한 둘이 아니었다. 우리 위원회가 너무 튄다고 생각했던지, 총괄팀이란 이상한 조직을 만들어서 우리를 견제했다. 총괄팀에 들어 있던 한 인사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여러 차례 '딴지'를 걸어 왔고, 정책 좌장은 그런 '갑질'을 방치하며 그 상황을 은근히 즐기는 듯 보였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이 보도하다

토지주택·기본소득위원회는 5개 공약을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 '공약 5: 특권과세 강화로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겠습니다.'가 들어간 데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이 공약은 재정관리 강화로 30조 원, 재벌·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강화로 15조 원, 조세감면 제도 개선으로 5조 원, 슈퍼리치에 대한 소득세 강화로 2.4조 원, 국토보유세로 15.5조 원 등 총 67.9조 원을 마련해서, 아동, 청소년, 청년, 노인에게 생애주기별 배당을 1인당 연 100만 원씩, 농민과 장애인에게는 특수배당을 1인당 연 100만 원씩 지급하는 동시에, 모든 국민에게 토지배당을 1인당 연 30만 원씩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위원회는 이재명 후보의 공약을 기사로 작성해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홈페이지에 기고했다. 외국 언론들이 그 홈페이지를 보고 기사를 작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강남훈 교수의 아이디어였다. 기사는 내가 작성했고 영문 번역은 내 딸이 맡았다. 실제로 그 직후 영국의 유력 언론 <가디언>(Guardian)은 일론 머스크(Elon Musk),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프랑스 대선 후보 브누아 아몽(Benoit Hamon)과 함께 이재명 성남시장을 대표적인 기본소득 주창자로 꼽았다. <가디언> 기자가 내가 기고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홈페이지 기사를 본 것이다. 강 교수의 아이디어가 적중했다.

토지주택·기본소득위원회는 소수였지만 마치 몽골기병처럼 움직여서 이재명 후보의 대표 브랜드 공약을 만들어냈다. 사실 2017년 대선에서 정책 이슈라고는 국토보유세·기본소득·지역상품권 3종 세트 외에는 없었다. 대선 본선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다른 후보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책 이슈라 할 만한 것이 부각될 여지가 없었다. 비록 내가 도왔던 후보가 경선을 통과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대형 스피커'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셈이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끝난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문재인 캠프와 이재명 캠프를 통합한다는 취지에서 대선 후보 직속으로 기본소득위원회라는 조직이 만들어졌는데, 거기에 이재명 정책 캠프 좌장이 스스로 공동위원장이 됐다.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1분과장을 지내고,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시장이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후에는 인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내다가 경기연구원장 자리에 오르는 등 정치권 주변에서 승승장구했다. 언론 보도를 보면, 그는 이재명 기본소득 공약의 밑그림을 그린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는 국토보유세·기본소득·지역상품권 공약과 관련하여 어떤 아이디어도 낸 적이 없고, 토지주택·기본소득 위원회 공약 작성에 조금의 노력도 보탠 적이 없다.

몇 달 간 이재명 대선 캠프에서 일하면서 불가사의한 점을 발견했다. 후보의 능력은 출중한데 정책 캠프는 너무 허술했고, 정책 캠프 좌장 역할을 맡은 인사는 정책 공약에 무관심했다는 사실이다. 갑자기 캠프를 꾸려서 그리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단기필마 식 행보를 보이는 것도 이상했고, 조직의 실상과 주요 인물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었을 텐데도 그 문제를 모른 척 방임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참다못한 내가 나서서 캠프 단체 대화방에 두어 번 문제 제기를 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했다. 이재명 예비후보는 대선 경선에서 탈락했고, 나의 정치권 참여도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와 함께 이재명 후보와의 인연도 끝이 났다.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이재명은 우여곡절 끝에 경기도지사로 선출되었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때에는 문제시되지 않았던 신변 문제들이 불거져 나와 논란이 벌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당시 문재인 후보가 경쟁 상대를 점잖게 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8년 9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갑자기 국토보유세를 걷어서 기본소득으로 지급하자는 주장을 다시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경기도에서 먼저 시행할 수 있도록 지방세 기본법을 개정해달라는 요구를 덧붙였다. 그 이후 이재명 지사는 기회 있을 때마다 국토보유세와 기본소득을 거론했다. 심지어 2018년 10월 29일 피고발인 신분으로 분당 경찰서에 출두하는 자리에서까지 국토보유세 이야기를 꺼냈다. 조만간 경기도 산하에 국토보유세와 기본소득을 다루는 위원회를 설치해서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의 도입 방안을 연구하게 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경기도형 국토보유세는 실현 가능성은?

나는 2017년 대선 경선 종료 후 이재명 지사를 만난 적이 없어서 그가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실현 가능성 제로라는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다. 지방세 세목이 될 수 없는 국토보유세를 지방세 기본법에 규정해 달라는 것부터 말이 안 되고, 설사 지방세로 신설한다고 해도 시행 여부를 해당 지자체의 조례에 위임하는 것이 법리에 맞는지, 현행 종합부동산세·재산세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지와 같은 불투명한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2017년 토지주택·기본소득위원회가 대선 공약으로 제안했던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는 그렇게 불투명하지 않았다. 종합부동산세를 폐지하는 대신에 도입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했고, 토지분 재산세를 환급해서 현행 지방 재산세와의 충돌을 피하는 방안도 마련해두고 있었다. 요컨대 국토보유세는 국세로 도입할 경우에는 아무런 기술적 난점이 없다. 그러나 그것을 경기도에서 도입한다고 하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변호사인 이재명 지사가 이런 내용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그는 왜 이런 실현 가능성이 없는 방안을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것일까? 내 추측으로는 그는 이미 2022년 대선을 내다보고 있다. 말은 경기도에서 먼저 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코 실현될 수 없으므로, 실현될 때까지(그러니까 2022년까지) 계속 거론할 수 있다. 이재명 지사에게 이것만큼 좋은 대선 전략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기본소득 연계형 국토보유세를 처음 만든 장본인으로서, 그것이 언론의 조명을 받아 널리 알려지는 데 만족할 수만은 없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막무가내식 제안 때문에 그 소중한 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재명 지사가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분수에 맞게 스스로를 '작은 일'에 한정하지 않고 '큰 일'을 위한 정치 전략에 몰두하면, 목표는 자꾸 멀어지기 마련이다. 큰 일은 작은 일의 누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을까? 부디 대통령이 할 말을 선점하려 하지 말고 경기도지사로서의 '작은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기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나중에 이재명 지사가 대통령 될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