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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사 속의 김기원(3): 경향신문 17.07.16일자

동숭동지킴이 2018. 11. 12. 09:11

[2017.07.16 | 경향신문 ]


[아침을 열며] 김상조 취임 한 달에 부쳐


오관철 경제부장


지난 14일로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역대 공정위원장과 사뭇 다른 것 같다. 직원들과 어울려 농구를 하고 치킨에 맥주 한잔을 곁들이며 소통하는 모습에서 보듯이 탈권위주의적 행보가 인상적이다. 언론이나 재계와의 만남에서도 그는 비교적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출발은 산뜻해 보인다. 그러나 아직 재벌개혁이란 본게임이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이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링컨>은 노예해방이라는 이상을 간직하면서 반대파들과 거래를 서슴지 않는 링컨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영화 속에는 나침반은 진짜 북쪽을 알려주나 길에 놓여 있는 늪지대와 사막, 진흙탕은 알려주지 않는다는 링컨의 대사가 나온다. 김 위원장 입장에서 보자면 재벌개혁이란 방향성이 뚜렷한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많은 난관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의 과거 강연이나 논문 등을 통해 볼 때 그는 분명 재벌 해체론자는 아니다. 재벌과 대기업의 갑질을 없애고 공정한 시장을 만들며, 영세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해소시켜 결국 다수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 그가 그리는 재벌개혁의 도달점이다

 

그가 건너야 할 늪지대와 사막, 진흙탕은 무엇일까. 공정위 내부에는 퇴직 관료들을 매개로 형성된 재벌과의 유착이란 적폐가 있다. 최순실 게이트 조사 과정에서 이런 공정위 고위관료의 민낯이 드러나기도 했다. 향후 예정된 공정위 간부급 인사에서 보수정권 10년 동안 친재벌적 행태를 보인 인사들에 대한 청산 작업은 불가피하다

 

공정위 OB들이 재벌을 변호하려 공정위를 넘나들고 은밀하게 후배들을 만나는 관행이 더 이상 용납되어선 안된다. 그러나 공정위원장 임기(3)를 마친 뒤 학계로 돌아갈 가능성이 큰 김 위원장과 달리 공정위 관료들은 퇴직 후 로펌이나 대기업행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김 위원장이 공정위 관료들의 조직적 저항에 빠지지 않도록 세밀한 리더십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34대 그룹 최고경영진을 만나 자발적 개혁을 주문했다. 중소기업·소상공인 단체장 간담회를 가진 건 지난 13일이다. 재벌에 지나치게 유화적 제스처를 보여준 것은 아닌지, 만남의 앞뒤가 바뀐 것은 아닌지 의아해하는 시각이 있다. 재벌개혁은 정권 초에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물론 재벌이 스스로 변신을 시도하면 가장 바람직하나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김영삼 정부 당시 재벌개혁의 좌초는 종종 재벌의 저항 사례로 언급된다. 당시 정부는 업종전문화 정책을 동원,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려 했으나 재벌의 저항에 부딪혔다. 취임 초 경제가 잘 풀리지 않고 재벌들이 신규 투자에 나서지 않자 결국 재벌 달래기에 나섰다. 대통령이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칼국수를 대접하고 재벌을 안심시켰다. 진보정권에서도 재벌의 저항을 뚫지 못했다는 것이 공통된 평가다

 

특정 가문이 지배하는 기업집단 재벌이 일가의 지배권을 강화하고, 경영권을 승계하려는 시도를 쉽게 멈출 리 없다. 새 정부 임기 초반 고개를 숙일지 모르지만 재벌 옹호 논리를 전파하며 김 위원장을 고립시키려는 시도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과거처럼 투자에 몸을 사리며 교묘한 압박을 가할지도 모른다

가시적인 재벌개혁 성과를 요구하는 진보세력도 때에 따라서는 김 위원장에게 부담일 수 있다. 대선 과정에서 재벌개혁을 외쳤던 정치권이 개혁 입법에 소극적 움직임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고 국가권력으로 경제권력인 재벌을 직접 통제하려는 방식도 쉬운 일이 아니다. 김 위원장은 과거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지혜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벌개혁의 전략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며 새로운 시대 환경에 부합하는 새로운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재단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가족경영 승계의 롤모델이다. 개혁주의 경제학자로 약 3년 전 고인이 된 김기원 전 방송통신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발렌베리 가문 사람들은 한국의 재벌 총수들처럼 요새 같은 집에 살지 않는다. 평범한 이웃과 마주치고, 주말이면 직접 차를 몰아 백화점도 찾고, 학부모회의에 참석해 다른 부모들과도 어울린다. 특권의식이 없으니 국민들이 존경하는 것이다.” 

 

재벌개혁은 가장 쉬울 것 같으면서도 가장 어려운 개혁 작업이라고 한다. 김 위원장이 재벌개혁에 대한 사명감과 치밀한 전략으로 재벌을 변화시키길 기대해 본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7162038025&code=990507#csidxda93fc860421c3891324bb7d83864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