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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기 추모사: 남편이 아끼던 후배 한성대 김상조교수님의 글입니다

동숭동지킴이 2015. 12. 16. 08:12

당신이 떠난 후 진보의 겨울이 너무 춥습니다

김상조(한성대 교수)

 

선생님! 요즘 너무 힘이 듭니다. 나이 50대 중반에 이른 놈이 무슨 어리광이냐 하시겠지만, 그냥 주저앉고 싶을 만큼 힘이 부칩니다. 엄혹한 현실에 좌절한 경우야 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곁에 계실 때에는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대학원생 때부터 중년에 이르는 오랜 세월 동안 선생님께 의지하는 습성이 제 몸에 배어버린 듯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갑자기 떠나시고 나니, 저는 길 잃은 아이처럼 무섭기만 합니다. 제 자신을 추스르기도 힘든데,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제가 주변의 후배들에게 용기를 주는 선배가 될 수 있을지, 정말 겁이 납니다.

선생님! 이 겨울이 너무 춥습니다. 척박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익숙했던 과거가 저물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의 미래가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우리는 겨울나기를 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국의 진보진영이 베짱이처럼 놀고 지낸 것만은 아닙니다.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다는데도 곳간은 텅 비었고, 이 매서운 겨울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과거의 타성에 젖은 진보를 개혁해야 할 절대절명의 순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갑자기 떠나시고 나니, 개혁적 진보의 길은 더욱 험난해진 듯합니다. 선생님의 냉정한 분석과 합리적 대안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이 순간, 선생님이 없는 이 겨울이 정말 춥습니다.

선생님! 당신의 몸은 떠났어도,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는 책으로 남았습니다. 비록 당신은 이 글의 출판을 원치 않으셨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선생님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합니다. 선생님, 부디 저에게 용기를 주십시오. 그리고 한국의 진보진영에 지혜를 주십시오. 이 겨울을 극복하고 참된 진보의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선생님, 사랑합니다.

선생님께 너무나 많은 것을 받기만 했던 후배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