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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기 추모사- 친구이면서 서로 존경했던 서울대 김명호교수님의 글입니다.

동숭동지킴이 2015. 12. 13. 09:27

추모사

 

청천벽력같은 부음을 접하고 망연자실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어느새 1주기가 돌아왔습니다.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서로 격려하며 함께 살아가기를 소망했던, 세상에 둘도 없는 지기(知己)의 추모사를 써야 하는 이 현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김기원 교수와 저는 경남중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동창으로서만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30년 넘도록 우정을 다져왔습니다. 제가 결혼한 해에 그도 곧이어 결혼하고, 신혼 때부터 줄곧 걸어서 10분 내에 만날 수 있는 지근거리에서 살았습니다. 부부 동반으로 동네를 함께 산책하거나 서로의 집에 가서 밤늦도록 시국과 학문을 논하던 나날이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훌륭한 벗과 사귀는 즐거움은 그를 잃은 뒤에 더욱 느끼게 된다는 마테오 리치의 ?교우론?의 한 구절이 절실하게 가슴에 다가옵니다.

 

김기원 교수의 첫 저서인 ?미 군정기의 경제구조?의 머리말을 보면, “항상 따뜻한 격려와 자극을 보내주고 있는 이웃의 친구 내외가 없었더라면 변변찮은 이 책조차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재벌개혁론의 정수를 담은 ?재벌개혁은 끝났는가?의 저자 서문에서도 별로 생각지 않았던 출판을 촉구하고 책 이름까지 지어준 이웃의 김명호 · 강영주 교수 부부에 대한 고마움은 남다르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각별했던 우리의 우정을 증언하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동창들이라면 모두 잘 알다시피 김기원 교수는 대단한 수재였습니다. 부산의 명문고인 경남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당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지망하던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수석 입학했습니다. 그리하여 변형윤 선생님, 이현재 선생님을 비롯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님들이 대단히 아끼고 촉망하던 인재였습니다.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미국의 일류대학에 유학하여 국내의 명문대 교수가 되는 그야말로 잘 나가는 길을 갈 수도 있었지만, 김 교수는 치열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국내에서 공부하면서 경제학계의 비주류로 남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김 교수는 세속적인 출세욕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늘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를 위해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할까만 고민했습니다. 원래 그는 사범대학을 나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평범한 교사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로 고민하던 중, 상과대학을 나오면 상업교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서울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대학 교수가 된 뒤에도 그는 소위 일류대학으로 옮길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외모에도 도통 신경쓰지 않은 채 후줄근한 차림으로 매일 전철 타고 출근해서 공부하는 생활로 일관했습니다. 그가 재벌개혁을 부르짖는 비판적 경제학자가 되자 국내 유수의 재벌 기업에서 사외이사 자리를 제안하며 회유하려 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한국경제에 대한 그의 식견과 개혁 의지를 높이 평가하여 정치권에서도 영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그는 늘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올곧은 지식인으로 살려고 했습니다.

 

작년 이맘 때 그와 영결하던 날, 저는 성년이 된 이후로 가장 많이 눈물을 쏟았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 애석하고, 분하고, 미안했습니다. 단지 제 친구라고 해서 그랬던 것만은 아닙니다. 세상에 그저 그런 친구들은 적지 않지요. 단지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고 해서 그랬던 것도 아닙니다. 조금 일찍 죽고 늦게 죽는 것이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하지만 김 교수와 같은 비범한 인재는 아무 때나 나오지 않는 법입니다. 더욱이 남북통일시대에 대비한 경제학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담대하게 떠맡고 나섰다가 뜻을 펴기도 전에 타계하고 말았으니, 과연 누가 뒤를 이어 그 과제를 감당할 수 있을지요. 진보 진영의 논객으로 명망도 높아지고 통일경제학을 개척하겠노라고 한창 열의를 불태우던 그 시점에 발목을 걸어 쓰러뜨리다니, 만약 조물주가 있다면 참으로 심술궂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투병하던 가장 힘든 시기에 그 곁을 지켜주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김 교수가 학문적 성과를 안고 독일에서 귀국할 날만 고대했던 것이 정말 죄스러웠습니다.

 

?재벌개혁은 끝났는가?에서 김기원 교수는 가슴이 뜨거운 체질에게는 역사연구보다 현상분석이 아무래도 더욱 신명나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남달리 뜨거운 열정으로 당대의 급선무를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하고자 했던 김 교수가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 뒤, 그의 빈자리가 갈수록 크게 느껴집니다. 아아, 김기원 교수가 살아 있다면 오늘의 이 사태를 어떻게 보았을까, 그의 고견을 간절히 묻고 싶어지는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끝으로, 요절한 천재 시인을 애도한 한시 한 수를 인용하는 것으로 저의 비통한 심경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조그만 일개 필부였건만 渺然一匹夫

죽고 나니 사람 숫자 줄어든 걸 알겠구나 死覺人數減

어찌 세상 돌아가는 꼴과 무관한 일이겠나 豈非關世道

사람들은 빗방울처럼 많다마는 人多如雨點

 

 

(김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