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 지론 묻어둘 수는 없었다”

“재벌개혁 지론 묻어둘 수는 없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ㆍ고 김기원 교수 유고집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 펴낸 선후배들

1년 전 세상을 떠난 고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유고집의 출간을 원하지 않았다. 진보진영의 대표적 경제학자였던 그는 “사회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신문 칼럼은 지면도 적고, 기회도 적어서”라며 자신이 운영했던 블로그에 141편의 글을 썼다. 하지만 그를 따르던 선후배들은 “그의 목숨으로 태어난 글들을 그대로 묻어둘 수 없었다(후배 정원호 박사)”고 고백했다. 그의 글은 책으로 묶여 1주기인 지난 7일 출간됐다. 책 제목은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로 블로그 제목에서 땄다.

지난 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진보적 경제학자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1주기 추도식 겸 유고집 출간기념회에서 참석자들이 김 교수의 생전 인터뷰 추모영상을 보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지난 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김기원 교수 1주기 추도식 겸 유고집 출간 기념회가 열렸다. 100명 내외로 마련된 자리가 꽉 찼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김상조 한성대 교수,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출간 기념회 시작 전 침묵 속에 책을 읽었다.

책은 김 교수의 주 전공인 재벌개혁·경제민주화 문제부터 노동문제, 정치문제, 통일경제에 관한 글로 이뤄져 있다. 재벌개혁 부문에서는 1% 내외의 자기자본으로 그룹을 쥐고 흔드는 재벌 그룹의 순환출자 문제부터, 덴마크·일본·독일의 중소기업 공장들을 둘러보며 직원들과 대화를 나눈 뒤에 느낀 점 등이 서술돼 있다. 진보진영에 대한 비판도 따갑다. 진보진영의 박노자 교수에겐 “현실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현실에 자기이념을 덮어씌우는 식”, 장하준·정승일 박사에겐 “수구적 진보”라며 날을 세운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유고집 발문에서 “고 김 교수는 실천적 경제학자”라면서 “그는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에 대한 상투적인 주장을 일일이 깐깐하게 검증하면서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고도 깔끔하게 서술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연구년이 시작된 2013년 9월 독일 베를린으로 넘어가 통일경제 연구를 시작했다. 책에서도 통일 독일을 살피면서 통일의 성과와 문제점을 짚고,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한계를 지적한다.

독일에서는 “수능을 앞둔 학생처럼” 통일경제 연구에 몰두했다. 치료를 위해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김 교수는 “이제 겨우 내가 바라는 통일경제 연구의 방향이 잡혀가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이날 추도식에서 부인 이수희씨(전 이화여대 연구교수)는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학문적 과제는 이어받을 수 없지만 인간적 사회를 만드는 과제는 기억하며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유고집은 일본어로도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