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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 오마이뉴스 및 경향신문 서평

동숭동지킴이 2012. 9. 10. 10:53

 

('오마이뉴스'에서 제 책에 대한 서평을 실었습니다. 제 책이 1부와 2부로 되어 있는데 주로 1부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책이 나온지 한달 반이 지나고 나서 서평을 싣기도 하네요.)

'진보학자'가 한국의 진보 비판한 이유는?

[서평] 노무현을 넘어서기 위한 김기원 교수의 제언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

 

12.09.08 17:23l최종 업데이트 12.09.09 20:33l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권부에는 5년 동안 34억 5000만 원을 가져다주면서 내 공장에서 내 돈 벌어주려고 일하다가 죽은 노동자에 대해서는 4000만 원, 8000만 원 가지고 그렇게 싸워야 했습니까? 그것이 인도적입니까? 그것이 기업이 할 일입니까?"

1988년, 13대 국회 때 열린 '5공 비리 청문회'에서 통합민주당 초선의원 노무현은 재벌 회장님들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특히 노동자를 대변해 유찬우 풍산금속 회장을 질타하는 장면은 보고 있는 국민의 속까지 시원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이 그를 '감동적인 정치인'으로 기억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책 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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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진보진영에서는 다시 '노무현'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재임 기간 노무현 '대통령'이 기대만큼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한미FTA, 이라크 파병, 대북송금 특검 등 일련의 정책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진보진영은 이보다 더 중요한 걸 빠트리고 있다. '재집권'을 위해서라면, 참여정부를 날카롭게 성찰하고 이를 뛰어넘어야 하지만, 이들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평소 진보진영에서 적극 목소리를 내온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가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창비 펴냄)라는 책을 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부 진보파처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그저 비난만 하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실천 가능한 다른 대안은 없었는지 제대로 따져올 필요가 있다. 그래야 2013년이든 2018년이든 진보, 개혁, 평화세력이 집권할 경우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서문에서)

김 교수가 특히 노무현 정부에 주목한 것은 김대중 정부와 달리 보수 세력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집권한 첫 진보개혁정권이기 때문이다. 총 2부로 이루어진 책은 노무현 정권의 정치력 부재 원인을 따져 보면서, 이와 함께 진보파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한다.

통치시기에도 선거 때처럼 '정치적 고려' 필요

먼저 노무현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통치 시기'에도 '선거 시기'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고려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북송금 특검은 노 정권의 정치력 부재를 드러낸 '최초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정부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김대중 대통령의 북한 방문에 거액이 오갔다며 발의한 특검을 수용했다. 후에 문재인 의원이 자신의 책 <운명>을 통해 해명하긴 했지만, 이는 호남세력이 참여정부에 등을 돌리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먼저 검토한 것은, 수사를 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것이었다. (중략) 다만 통치행위를 주장하려면 전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김대중 대통령께서 그 일을 지시했거나, 하다못해 사전에 보고받고 허용 혹은 묵인했다는 사실을 인정해 줘야 했다. 그래야만 김 대통령의 결단에 의한 고도의 통치행위를 주장할 수 있었다. (중략) 그런데 얼마 후 김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당신은 사전에 몰랐다는 입장을 되풀이 했다. (중략) 이제 남은 것은 특검에 의한 수사냐 검찰에 의한 수사냐를 선택하는 것뿐이었다." (<운명> p.228)

여기에는 노무현 정부의 취약한 정치력이 크게 작용했다. 아무리 제왕적 대통령을 운운하더라도 통치시기에도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반대편을 끌어당기고, 자기편을 챙기는 '정치력'이 중요한데, 참여정부는 '행정'에만 매몰됐다. 저자의 말대로 참여정부가 '정치적 고려'를 했더라면, 한나라당의 정치공세를 과감히 거부하는 게 나았다.

물론 그러면 수구적 보수언론과 검찰은 격렬하게 반발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선거법 위반 발언 따위로 탄핵에 걸리는 것에 비해 대북송금 문제는 명분도 있고, 지지 세력도 훨씬 강력했을 것"이라며, "남북관계를 파탄내지 않기 위해 대통령직도 걸 수 있다고 했으면 또 한 번 국민들이 감동하지 않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저자의 말대로 특검을 수용함으로써 수사범위는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민심이 크게 돌아선 것은 사실이었다.

진보개혁세력을 등 돌리게 한 정책으로 '이라크 파병'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이것도 당시 상황에서 보면, 북한의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의 협조가 절실했기 때문에 파병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웠다는 설명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북한 폭격 가능성이 존재하는 경우엔 한국은 항상 미국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저자의 지적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럴 때는 오히려 역발상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기보다 오히려 '북한'을 대미협상카드로 활용해 이라크 파병이 북한을 긴장시켜 핵무장을 강화할 위험이 있음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치 시기 이점인 '권력' 활용 못해... 진보파는 어떤가?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선거 때와 달리 통치시기에 얻은 '권력'은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권력을 얻지만, 그것이 무한대의 힘을 가지는 게 아니었다. 온 사방에 전선을 치게 되면, 권력이 분산돼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초기부터 검찰과 맞짱을 뜨고, 수구적 보수와 원수가 되고 노조와도 사이가 틀어졌다.

반면 자신이 원하는 정책을 실현한 정치인들은 선택과 집중을 확실히 했다. 2009년 취임한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이 대표적이다. 당시 김 교육감은 '무상급식'이라는 이슈로 한나라당이 다수였던 경기도 의회와 부딪혔다. 그러나 여기서 대중의 지지를 확실하게 얻었고, 그 힘으로 인권 조례와 혁신 학교라는 개혁 정책을 펼쳐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처럼, 민주노동당 등과 같은 진보파도 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노 정부를 비판할 때 하더라도 수구적 보수 세력의 공세에 따라 수세에 몰리면 힘을 보태는 '일면 투쟁, 일면 연대'를 해야 하는데 이들은 정권 내내 '투쟁'만 했다.

물론 노무현 정부가 시행한 이라크 파병 등은 민주노동당의 비판의 대상이 될 만했다. 하지만 저자의 지적대로 민노당은 공고한 수구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권력과의 투쟁이라는 훨씬 더 중요한 전선을 망각했다. 노 대통령이 탄핵에 몰릴 때나 전효숙 후보자의 헌법재판소장 임명을 둘러싸고 한나라당이 생트집을 잡을 때 민노당은 거의 방관했다.

아무리 정권의 책임이 일차적으로 있다 하더라도 다 합쳐도 소수파에 지나지 않는 진보개혁진영이 힘을 합쳐야 할 때 힘을 합치지 못하고, 분열한 것은 노무현 시대의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밝혀두지만, 이 책의 목적은 노무현 정권과 진보 진영에 대한 날 선 비판, 그 자체가 아니다. 진보개혁세력이 앞으로 다시 집권하면 이런 과오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지침서'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2012년, 아직 미래를 단언하기는 이르지만, 그렇다고 진보 진영에도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언제 해고를 당할지 모르는 비정규직은 노동자의 50%가 넘고, 노인의 45%가 빈곤에 시달리며, 빈곤 아동이 100만 명을 넘어서는 시대. 진보 진영은 이제라도 성찰을 통해 이제까지의 공과를 넘어 '새로운 비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 한국의 진보를 비판하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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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경향신문 9월 11일자에 한기호 소장이 제 책과 <새벽>이란 책을 묶어서 서평을 썼습니다. <새벽>은 김대중 평전입니다. 아래에 그 서평을 옮겨 놓습니다. 이 서평 역시 위의 서평과 마찬가지로 주로 제 책의 1부 내용만 다루고 있습니다. 한진중공업 사태 등을 다룬 2부는 진보파에겐 역시 '불편한' 내용일까요.)

 

 

[한기호의 다독다독]산에 걸려 죽는 사람은 없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비정규직을 몇 년 떠돌다가 비록 2년 계약직일망정 그나마 안정된 직장에 다니던 27세의 여성이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 여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근무시간이 지나서는 일하지 못하게 했고, 휴일도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고급차를 끌고 가족여행을 다녀온 직장 상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부서장이 바뀌자 구조조정이 시작됐습니다. 최근의 실태를 파악해보니 실제적인 정년이 46세였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30대 후반의 직원들도 전전긍긍했습니다. 하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일자리로의 이직이 어디 쉬운가요?”


 

그 여성의 말은 이어집니다. “결혼한 친구의 아이가 너무 예뻐서 나도 결혼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며 마구 울어대는 친구 때문에 포기했어요. 몇몇 친구들은 학자금 대출도 갚지 못해 허우적대고 있어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았지요.”


그 여성의 해답은 남들이 선망하는 ‘10차선 도로’가 아니라 평생 자신이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을 이제라도 찾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여성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해주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부러워했습니다.

1%를 제외한 모든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든 총체적 난국의 이명박 정권은 이제 끝나갑니다. 진보적인 경제학자 김기원은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창비)에서 “권모술수만 쓸 줄 알았지 올바른 길을 가겠다는 자세가 없는 이명박 정권” “ ‘747’(매년 7% 성장, 10년 후 4만달러 소득, 세계 7위 경제규모) 따위 장사치 수준의 헛공약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울 만큼 비전을 결여했던” 이명박은 “이상 자체가 없는 인물”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저자는 이명박 정권이 도대체 뭘 잘했는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불법사찰, 국책연구원의 자율성 훼손, 마음에 들지 않는 시민단체 탄압, 방송 장악, 미네르바 구속, 용산참사, 건설업자는 살찌게 했으되 나랏돈을 탕진하고 환경파괴의 우려를 낳은 4대강사업, 감세정책, 양극화 심화, 전쟁의 위기까지 초래한 반실용적인 ‘비바람정책’ 등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일일이 열거했습니다. 이를 요약하면 민주주의 후퇴, 경제 위기의 심화, 남북관계의 파탄으로 정리됩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10년은 어땠을까요? 저는 그것을 알아보려고 김대중 평전인 <새벽>(김택근, 사계절)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8년 동안 ‘김대중 글 감옥’에서 분투한 이가 정리한 평전이라 잘 읽혔습니다. 우리도 이만한 평전을 갖게 되었구나, 하는 감동도 느꼈습니다. “김대중의 삶이 산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산맥이었다”는 고백에도 공감했습니다.

 

특히 햇볕정책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 노태우 정부 시절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을 이끌어낸 주역인 임동원이라는 인물을 영입한 대목은 감동적이었습니다. “평화통일을 말하면 그 순간부터 빨갱이가 되고, 민주화를 외치면 과격분자가 되고, 정치하겠다면 거짓말쟁이가 되는 야만의 세월을 의연히 버텨 온 그(김대중)가 바로 내 앞에 앉아 있었다”고 고백하는 임동원을 인재로 알고 끌어들인 ‘삼고초려’는 “한반도를 바꾸는 대단한 사건”이 맞습니다.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이런 사건만 저질렀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 하나만으로도 역사에 길이 평가받을 것입니다. 그도 2009년 2월23일의 일기에서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반민주, 반국민경제, 반통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정권의 말로를 정확하게 내다본 역대 최고의 경륜을 지닌 정치인의 혜안이 돋보입니다.

그러나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죽는 사람은 있어도 산에 걸려 죽은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품은 이상이 아무리 높고 커도 결국은 사소한 사건에 걸려 넘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다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비리와 가족비리라는 돌부리가 결국은 거대한 산의 존재를 잊게 만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는 노무현 정권과 개혁진보진영에 대한 쓴소리를 마음껏 늘어놓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책입니다. 열정과 감동으로 치면 노무현 대통령만 한 인물이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대연정 제안과 기자실 파동, 대북송금 특검 수용,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추진, 인사정책의 부실 등은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저자는 노무현 정권의 정치력 부재는 ‘선거시기’와 ‘통치시기’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잘못이 크다고 말합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산은 높았습니다. 그들의 꿈과 이상을 어찌 “이상 자체가 없는” 이명박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이 산이 아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이명박이라는 치욕적인 역주행을 낳았습니다. 그 바람에 이 땅의 젊은이들을 비롯한 모든 세대가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분명한 사실을 집권을 꿈꾸는 진보진영이 명심, 또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