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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홍길동인가요?

동숭동지킴이 2011. 5. 6. 10:52

 

북한은 홍길동인가요?

 

김기원 (방송대 경제학과 교수)

 

검찰이 농협의 전산망 마비를 북한 소행으로 발표했습니다. 검찰 말대로라면 북한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 홍길동’입니다.

 

작년엔 엄중한 한미 군사훈련의 경계망을 뚫고 천안함을 격침시키더니, 이번엔 사이버공격으로 한국 중요 금융기관의 보안망을 망가트린 셈입니다.

 

이게 만약 사실이라면 북한은 새로운 외화벌이 수단을 개척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중동 등지로 미사일 따위를 수출하는 게 미국의 제재로 어려워진 판에, 사이버무기는 해상에서 미국에게 압수당할 염려도 없으니 살(?) 길이 열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천안함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정부 발표에도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나중에 언급하고, 북한의 사이버 기술 다시 말해 IT기술에 대해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여러 해 전 처음 방북했을 때 일입니다. 당시 평양의 5.1 경기장에서 아리랑 축전을 관람했습니다. 이 축전은 북한이 자랑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집단체조-카드섹션(북한말로는 배경대) 공연으로 참으로 장관이었습니다.(고생하는 학생들이 안쓰럽긴 했지만.)

 

그 카드섹션에선 아름다운 그림도 만들고 선전구호도 펼칩니다. 그 중 경제와 관련된 구호를 보면서 놀란 대목이 있었습니다. 감자재배와 관련된 ‘종자혁명’을 말하더니 갑자기 정보기술시대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공업, 공장에 관한 구호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참 이상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가기는 했습니다.

 

공장 가동률이 20~30%인 상황이었으므로 내세울 게 없었던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기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기계부품도 구하기 힘들어 공장 설비를 고철로 중국에 몰래 팔아먹기도 한 형편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농업혁명→공업화→정보화’라는 일반적 발전단계에서 공업화를 대충 건너뛰고 정보화 사회로 ‘단번도약’(‘개구리 도약’이라고도 합니다)하는 걸 김정일 위원장이 강조한 셈입니다.

 

하지만 공업화의 충분한 기반 없이 정보사회가 가능할지 의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주민들에게 정보를 차단하는 독재사회에서 IT산업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당시 방북 일행 중엔 북한의 IT인력을 활용해 보려는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본인은 무리한 시도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북한에 대해 차츰 공부를 하면서보니 북한의 IT 수준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는 높았습니다.

 

북한의 소프트웨어 전문인력을 연변이나 베이징에서 고용하고 있는 회사들이 있었는데, 꽤 수지가 맞아 고용규모를 확대하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 북한인력은 뽑히고 뽑힌 수재들이 가는 대학의 졸업생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최강의 바둑 프로그램인 ‘은별’이 북한에서 개발되었다는 건 잘 알려져 있지요. 음성인식, 문자인식, 지문인식 등 각종 인식기술에서도 상당한 수준이라 합니다.

 

그러나 IT 중 자본이 필요한 하드웨어는 형편없이 뒤떨어져 있습니다. 반도체산업 같은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컴퓨터 보급률도 매우 낮습니다. 휴대폰도 최근 급격히 늘고는 있습니다만 아직 가입자가 50만 명 미만입니다.

 

북한 안내원에게 북한에선 이산가족 소재를 확인하는 데 왜 그렇게 많은 시일이 소요되는지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대답을 우물쭈물했는데, 아마도 주민들에 대한 전산입력이 제대로 되어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물적인 하드웨어보다는 인적 자원으로 승부하는 소프트웨어에서 IT의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듯싶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아직 그걸로 큰 돈 벌고 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저 인건비 약간 따먹는 정도지요.

 

그렇다면 이런 북한이 농협 전산망을 마비시킬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을까요. 뭐라고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긴 힘듭니다. 탈북자들 덕분에 사정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외부에서 알기 힘든 부분이 너무 많으니까요.

 

북한 문제에선 무식한 돌쇠처럼 일단 내지르고 보는 조선일보는 북한의 사이버 공격조직이 1000여명에 이르고 미국 CIA에 뒤지지 않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CIA와 맞먹는다는 건 상식에 너무 어긋나지 않는가요. 또 북한 전체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인력이 12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사이버 공격조직에만 1000명이 활동한다는 것도 역시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입니다.

 

그러면 실력과는 별개로 북한이 농협전산망을 공격하려는 의도는 있었을까요. 이 역시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비민주적이고 비효율적인 북한체제는 한국정부와 같은 행동규범을 갖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한국정부의 발표는 충분히 믿을 만한가요. 해킹에 관한 전문가가 아닌 본인이 그걸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니 전문가라 하더라도 한국정부가 천안함 때처럼 안보 운운하면서 정보를 숨기고 있어서 진실을 가리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래서 좀 일반론적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도대체 정부란 걸 얼마나 믿어야 할까요.

 

9/11 이후 사정이 나빠지긴 했으나 그래도 미네르바를 잡아넣고 G20 포스터에 (MB를 상징하는) 쥐를 그려 넣었다고 처벌하려는 우리보다야 더 민주적이고 더 투명한 미국정부 사례를 한번 보십시다.

 

며칠 전 미군은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습니다. 그런데 사살 직후 미국정부는 그가 무장하고 있었고 아내를 인간방패로 이용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곧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현장에 있던 그의 딸 등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오사마 빈 라덴을 법정에 세우지 않고 멋대로 처단한 미군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오사마의 이미지를 더럽히려고 미국정부가 거짓말을 한 것이지요.

 

이건 어쩌다 저지른 미국정부의 실수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는 더 심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비교적 온건파로 알려졌던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이 유엔에서 발언하는 모습을 TV에서 시청한 바 있습니다. 그때 그는 알루미늄 통 같은 걸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이라크가 핵무기 따위의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고 단언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침공해 놓고 보니 그건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잘못된 정보에 기초해, 아니 어쩌면 잘못된 정보만 일부러 부각시켜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리해서 수십만 명의 무고한 이라크인이 살해되었지요.

 

그렇다고 본인이 결코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옹호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인명을 살상하는 폭격 대신에 햇볕정책으로, 그리고 이라크인 스스로의 힘에 의해 이라크를 변화시켰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한편 1960년대 월맹의 통킹만 사건도 미국 정부가 날조한 일이었지요.

 

결국 미국 같은 민주정부도 얼마든지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걸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알카에다든 이라크든 월맹이든 모두 악한 집단이므로 이들을 때려잡으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거짓말도 불사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여부에 대해 미국이 잘못 판단한 데에는 이라크 피난민들이 제공한 허위과장 정보가 작용했습니다. 피난민들이 뻥튀기를 해서라도 인정받고자 한 결과지요.

 

그러니 탈북자 증언에 대해서도 걸러서 들어야 합니다. 조선일보는 탈북자 이야기를 제대로 걸러서 보도하지 않는 대표적 언론인데, 일부러 그렇게 하는 건지 무식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미국정부도 이럴 진데 한국정부 특히 수구·보수적인 MB정권을 과연 얼마큼 신뢰할 수 있을까요. 북한정권은 악마의 무리이므로 나쁜 일을 다 그들 소행으로 뒤집어씌워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요.

 

물론 거듭 강조하지만 북한정권은 비민주적이고 비효율적입니다. 또 일본인 납치에서 보듯이 국제적으로 범죄로 인정되는 일도 저지른 사례가 있습니다. 따라서 천안함 사건이건 전산망 마비건 북한이 저질렀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비민주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건 낙후되어 있다는 뜻이지 범죄자라는 뜻은 아닙니다. 조선왕조가 비민주적이고 비효율적이었지만 범죄집단이 아니었듯이 북한왕조도 늘 범죄를 일삼는 집단이라 하기는 곤란합니다.

 

우리는 양쪽이 다투고 있을 때 과거에 나쁜 일을 한 쪽이 또 잘못했을 거라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런 선입견은 틀릴 수 있습니다. 과거 행적을 참고는 해야겠지만 당시 상황에 대한 검토가 더 중요합니다.

 

예컨대 신정아씨와 정운찬총장의 말이 엇갈릴 때, 한 쪽은 전과자고 다른 쪽은 저명인사라 해서 무조건 저명인사를 옹호할 수는 없습니다. 저명인사도 얼마든지 치사할 수 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북한정권과 나쁜 사태를 연관 짓는 데도 조심해야 합니다. 세계가 납득할 만한 아무런 결정적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그저 나쁜 일은 다 북한 탓으로 돌린다면 북한이 그냥 있지 않을 것입니다.

 

가령 북한이 천암함을 침몰시킨 게 아니라 칩시다. 그러면 연평도 폭격은 천안함 침몰 누명을 덮어씌운 데 대해 북한 측이 분노한 탓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살기 힘든데 억울한 누명까지 씌우면 보통사람이라도 가만있을까요.

 

본인이 이전 글에서 썼듯이 신정아씨는 유부남과 불륜을 저지르긴 했지만 꽃뱀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기자들이 그녀를 꽃뱀으로 몰아버렸으니 분노를 터트린 것이지요. 그녀의 분노에 의해 여러 명 다쳤는데 북한이 분노하면 어찌될까요.

 

북한을 무조건 겁낼 필요는 없지만 쓸데없이 자극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런데 MB정부는 마치 어린애가 불장난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국민들이 불안하지요.

 

근대시민사회에 이르지 못한 낙후된 북한정권. 그리고 아무런 전략전술도 없이 밀어붙이기만 하는 남한정권. 아, 참으로 우려스럽습니다.

 

남한정권이 아무런 전략전술도 없다는 표현은 좀 지나칠지도 모르겠습니다. 북한정권의 붕괴만을 기다리는, 하지만 만약 붕괴된다면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는 그런 전략·전술은 있는 것 같으니까요.

 

그런데 그나마 약간 위안이 되는 일이 있기는 합니다. 검찰이 전산망 마비를 북한 소행으로 발표했는데도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와는 달리 동아일보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빌려 검찰발표의 의문점을 지적했습니다(상세한 내용은 5월 4일자를 참조).

 

수구·보수의 한 덩어리로 여겨지던 조중동에서 균열이 생긴 걸까요. 종편TV 출범을 앞두고 너무 수구꼴통으로 굴다간 시청자 확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걸까요.

 

어찌됐든 이성을 도외시한 광기(狂氣)에서 우리 수구·보수 세력 특히 조중동의 일부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그건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천안함 사태 때 일입니다. 주한 CIA지부장과 주한 미국대사를 지냈던 그레그는 러시아측 조사를 근거로 천암함이 북한 어뢰가 아니라 원래 바다에 깔려 있던 기뢰에 의해 침몰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일이 있었습니다.

 

고위인사였고 정보통이었던 그레그의 이 발언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녔는데도 당시 조중동은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모두들 이에 대해 아예 소개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다음에 그레그가 도대체 무슨 발언을 했는지는 제대로 밝히지 않은 채 다짜고짜 그를 비판한 칼럼만 게재했습니다. 그에 비하면 이번의 동아일보는 언론 본연의 모습을 되찾은 듯한 느낌입니다. 계속 그럴 건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하겠지만요.

 

바람직한 선진국에선 합리적 진보파와 합리적 보수파가 서로 생산적 경쟁을 합니다. 하루빨리 조중동의 일부라도 합리적 보수파로 거듭났으면 합니다.

 

한편, 검찰발표 다음날 국군 기무사령부 고위관계자는 전산망 마비를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동아일보와 경향신문 등은 이 발언을 보도했지만, 조선일보는 역시 수구·보수의 ‘오야붕’답게 이를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요컨대 검찰발표가 섣부르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냥 “북한의 소행이 아닐까 의심스럽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는 정도로 했으면 훨씬 신뢰가 가지 않았을까요.

 

개인 차원에서도 아는 걸 안다고 하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정권 차원에선 이게 더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연평도 포격이라는 일종의 전쟁 상태까지 이른 남북관계에서는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신중한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정권이든 언론이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북한관련 발언을 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런데도 MB정권은 막가파식 대북정책을 계속하고 있는 듯싶습니다. 국민의 안위 대신에 정권의 안위만 고려하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위 북풍의 효과는 과거와 다릅니다. 천안함 침몰 때는 오히려 정권에 역풍이 불었습니다. 제발 그걸 교훈 삼아 앞으론 남북한 정권 모두가 막가파로 치닫는 일이 없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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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1) 2012. 1. 13


본문에서 언급한 그레그씨가 오마이 뉴스와 신년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는 천안함이 당시 미국해군과 합동군사훈련 중이었고 그 군사훈련 중에 북한군이 침투해서 어뢰를 발사한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며, 또한 러시아조산단이 천안함 밑바닥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천안함은 어망에 걸렸는데 그 어망이 배를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과정에서 유실된 기뢰와 부딪쳤다고 합니다. 그러니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의 인터뷰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83494&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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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2) 2012. 1. 19

<사실을 날조하는 조선일보?>

천안함 사건에 관해 김정남이 마치 북한의 소행임을 인정한 것처럼 조선일보가 사실을 날조(?)했음이 드러났습니다.

아래 경향신문 기사 링크를 참고하십시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1182010341&code=9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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