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

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한겨레신문> 2011. 1. 31.

동숭동지킴이 2011. 2. 23. 17:47

 

한겨레신문 2011/ 1/ 31

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

3부: 정책을 말하다-경제

④ 전문가 좌담

황보연 기자

 

홍종학 진보정권 경제, 관료에 맡겨 자산버블·양극화 해결 못해

김기원 진보진영 무조건 반대 안돼 전략·전술 세워 비판·계승을

정태인 MB정부 4대강·성장 고수 거품 언제든 폭발 가능성

 

 

사회(이하 사) 경제정책의 진보적 대안을 논의하려면 먼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이른바 진보정부 10년 동안의 경제정책 기조에서 진보의 싹이 있었는지 짚어봤으면 한다.

 

홍종학(이하 홍) 지난 10년간 진보정부가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한계도 드러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현재 경제정책을 운용하고 있는 관료나 지난 10년간 경제정책을 운용했던 관료나 질적 차이가 거의 없다. 경제는 관료들한테 맡겨놓은 상황에서 진보적 의제를 다루려고 했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김대중 정부에서는 생산적 복지로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이다. 기초생활보장 등 복지제도의 토대를 닦아 놨으니 말이다. 참여정부에서는 동반성장이라고 하는 대단히 중요한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앞으로 진보적 정권이 재탄생하러다도 같은 오류를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지난 정부의 한계와 성과를 좀 성찰적으로 봐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전술과 전략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옳다고 하는 주장은 있었지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전술과 전략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 진보정부의 성과와 한계다.

 

정태인(이하 정) 참여정부에서 큰 아젠다는 대통령이 직접 지휘하지만 경제는 뭔가 기술적인 거라고 생각해서 경기관리 등에 대해 관료에게 맡겼다. 그 이후에는 결국 관료들이 경제사회정책의 기조까지 모두 포획하게 된다. 결국은 두 정부 모두 시장에 맡김으로써 자산거품과 양극화를 초래했다. 일부 복지정책을 시행했지만 국민 불만은 커졌고 양극화가 구조화되는 오류를 범했다. 복지예산이 증액됐지만 경제정책 기조에서는 신자유주의를 거의 교정하지 못했다. 예를들어 참여정부에서 혁신주도 경제를 강조했는데 국가혁신체제는 흐지부지됐고 균형발전 정책은 부동산 정책이 됐다. 빨리 성과를 보기 위해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의 이름으로 기업에 특혜를 주고 전국의 땅값 올리리고 이것이 양극화 심화로 이어졌다.

   

김기원(이하 김) 지난 두 정부의 의의와 한계를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겠다. 첫째, 아이엠에프(IMF) 사태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편으론 효율이 어느 정도 개선되고 다른 한편으론 양극화가 진행됐다. 둘째, 자본주의 발전단계로 본다면 압축성장을 하다보니까 선진국이 겪었던 중상주의(개발독재), 자유주의, 복지주의, 시장만능주의 등 4개의 이념과 정책이 동시에 각축을 벌였던 시기가 두 정권 집권기였다. 두 정권은 자유주의 개혁과 복지주의 진보를 지향하긴 했으나 어정쩡했거나 착각을 하기도 했다. 셋째로 한반도 차원에서 보면, 남북간 경제협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두 정권에서다. 성과가 꽤 있었으나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그렇다면 다시 진보적 경제정책을 펼치려면 어떤 데 초점을 맞춰야 할까.

 

재벌이 장악하고 있는 재계, 보수 수구적인 언론, 그리고 관료의 삼각 동맹이 문제다. 또 진보진영이 취약한 부분이 경제위기 대처능력이다. 위기대처 주도권을 관료에 넘겨버리게 되면 중요한 게 다 넘어간다. 진보진영은 경제문제 가운데 금융에 특히 약하다.

 

진보진영이 정권을 다시 잡으면 반드시 경제위기가 올 가능성이 높다. 경제위기가 진보진영이 정권을 잡게 될 계기이면서 위기 요인이 된다는 게 아이러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그렇다. 미국 민주당이 8년간 열심히 진보정책을 준비해 막상 정권을 잡고 나니 경제위기를 해소하느라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보진영은 반드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국민 의식이 많이 달라졌다. 2002년에 탤런트 김정은씨가 한 카드회사 광고모델로 나와 “부자되세요”라고 하면서 사람들이 모두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다. 2008년 총선 때 한나라당하고 민주당의 공약이 특목고와 뉴타운으로 똑같았다. 그런데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무상급식이 주요 쟁점이 됐다. 예전에는 국민 모두가 위너(승자)가 되려고 노력했다면 지금은 잘못하면 언제든 루저(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거다. 이런 국민 인식의 변화와 열망을 정책으로 만들어서 관철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 집권 3년이 흘렀다. 경제정책의 공과를 평가해 볼 수 있는 시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보수의 논리에 바탕을 둔 성장위주의 정책을 편다고 비판받고 있는데, 실제 통계로 보면 지난 3년동안 분배가 악화하지 않은 것으로 돼있다. 비정규직 증가추세도 둔화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세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를 해보겠다. 첫째, 구조조정을 거의 방치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 가계부채 등에 대해서다. 둘째로 이명박 정부는 개발독재와 시장만능주의에 경도되었다. 4대강 사업 같은 게 개발독재고 부자감세 같은 게 시장만능주의다. 선진화가 아니고 후진화 과정이다. 셋째로 한반도 차원에서 보면 냉전이념에 사로잡혀 반실용적 정책을 폈다. 남북경제협력을 거의 파탄 지경까지 몰아가고 있다.

 

분배 관련 통계가 더 나빠지지 않은 것은 부채로 모든 문제를 메꿔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 경제위기가 와서 가계부채 등에 대한 문제가 제기가 됐지만 전혀 통제하지 않고 계속 간다. 이것이 앞으로 2년쯤 후에 경제를 굉장히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있는 거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지만 비정규직 비율이 조금 줄어들어 지니계수도 좀 나아졌을 가능성이 있다. 아무튼 세계경제의 위기 상황이 이명박 정부를 구했다. 세계경제 위기가 없었으면 ‘747’(7% 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경제강국) 공약을 밀어부쳐 경제가 폭발했을 테니까 말이다. 문제는 이미 6~7년 동안 끼인 거품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데 있다. 만일 세계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지든지 중국의 성장률이 8% 이하로 떨어진다거나 하면 바로 문제가 될거다. 이명박 정부에서 잘한 경제정책은 선물환포지션 규제, 외국인 채권에 대해 과세를 부활시킨 거다. 이건 미미하다고 할지언정 잘 한거다.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논의 된 것을 그야말로 선제적으로 도입했다.

 

비정규직 비율이 좀 줄었다고 했는데 거기엔 참여정부 때 제정한 비정규직 보호법 영향이 있다. 이 법을 제정할 때 노동계나 진보진영이 반대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정권 들어와서 한나라당이 그 법을 개정하려고 하니까 이걸 노동계와 진보진영이 지키려고 했다. 우리나라 진보진영은 100% 마음에 안 들면 매몰차게 반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성해야 한다.

 

최근 민주당이 무상복지 방안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뜨겁다. 이미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중요한 선거 쟁점이 됐고 찬반양론이 선거 결과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무튼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높아졌는데, 우리가 실현할 수 있는 적정 복지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교육, 의료, 주거, 실업, 노후 등 5대 불안을 모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이런 문제들 때문에 자살에 이르지는 않을 정도로 복지가 확충돼야 한다. 고령화 추세를 고려하면 90조~110조원 정도가 더 필요하다. 민주당이 거론하는 16조원은 너무 작게 잡은 건데, 실제로 전면적 복지를 하지 않는다면 매년 25조원씩 감세로 줄어들었으니 이걸 되돌리고 4대강 사업 투자 등을 철회한다면 어느 정도 재원은 마련된다. 무리한 건설 투자 예산만 줄여도 복지 기초를 닦을 수 있다.

 

하지만 전면적 복지를 시행하려면 증세를 해야 한다. 내가 세금을 내면 내가 갖고 있는 불안 중에 어떤 게 해결된다는 걸 분명히 제시해서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내야겠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예를들어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여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추자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데 이건 사실상 12조원 증세하자는 얘기다. 건강보험료를 1만1000원씩 더 내면 1년에 12조원이 만들어져 사실상 의료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는 거다. 사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 소득세와 법인세, 사회보장기여금에서 재정 수입이 적다. 특히 소득세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3.6%로 오이시디 평균 9.0%에 비해 무려 5.4%포인트나 낮다. 소득과세만 오이시디 수준으로 해도 약 100조원의 추가 증세가 가능하고 복지 재원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지금 세금 이야기를 할 때는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성장 대 복지라는 프레임에 우리가 모두 갇혀 있다는 데 있다. 복지를 이야기하면 아무도 성장을 이야기하지 않는데 그건 아니다. 복지가 퍼주기라는 식의 논쟁에 흡수되면 안된다.

 

보수의 철학은 경쟁을 시켜서 탈락되면 그 때부터 빌어먹으라고 해서 급식을 주는 거다. 그러나 진보는 세계적 경쟁에서 탈락된 것이 그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보는거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해서 직장을 잃었는데 왜 그게 개인 잘못이냐는 거다. 개인한테 책임을 떠넘기면 누가 벤처 투자를 하고 인적자산에 투자를 하겠느냐는 거다. 그래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사회통합을 기본으로 한 경제성장 전략이 필요하다. 유럽에서는 복지가 사회적 보험을 들어주는 것이고 이것을 바탕으로 벤처를 하라고 한다. ↗

 

 

 

 

 

한국사회 미래를 말하다(좌담)

 

 

» 홍종학 경원대 교수,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왼쪽부터)이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경제정책의 진보적 대안을 말한다’라는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복지재원 마련

부유세보다 소득·자산에 비례한 복지세로

 

성장·복지 넘어 성장전략임을 이해시켜야

 

소득세 OECD 수준만 올려도 100조 생겨

 

 

FTA·일자리

 

나프타 체결뒤 삶 팍팍…FTA 재검토 필요

 

자본에 편중된 지원, 노동으로 중심 이동을

 

효율성 살리되 노동유연성 부작용 줄여야

 

그런데 실질적으로 복지정책을 반대하는 쪽의 프레임은 대중적 호소력이 대단히 강하다. 세금 폭탄론이나 ‘재벌 손자한테 무상급식을 주면 자존심 상하지 않겠느냐’는 논리가 현실에선 먹혀들고 있다. 이런 논리를 깰 수 있는 재원 마련 방안은 없겠나.

 

우선 지출구조를 바꿔야 한다. 토건사업 등 헛돈 들어가는 부분, 남북한 평화구조 정착으로 줄일 수 있는 국방비 등을 복지 재원으로 돌릴 수 있는 거다. 또 부자감세와 재벌감세를 되돌려야 한다. 이런 것은 여론의 저항이 크게 없을 것 같다. 재벌과 관련된 조세특혜나 탈세 등을 바로 잡아야 한다. 이게 1단계이고 그 다음 단계가 증세다.

 

재원이 생각보다 많이 안들어간다. 참여정부에서 세수기반이 굉장히 많이 늘었다. 복지제도가 제대로 되려면 소득의 투명성이 높아져야 한다. 소득투명성이 높아지지 않은 상황에서 복지를 늘리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미국 루스벨트가 복지 틀을 잡을 때 감사기구를 굉장히 엄격히 했다. 그것이 미국에서 복지제도를 안정적으로 운영한 배경이다.

 

이제는 아래로부터 성장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또 복지를 국가가 다 하는 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사회서비스와 관련된 복지는 협동조합 같은 민간조직이 맡아서 할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놓기는 했지만 실제 경제 생태계 내에서 살아날 수 있게 해야 한다.

 

진보진영에서 복지 재원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느낌이 든다. 좀더 생산적으로 복지 논쟁을 끌고 가자면 더 정교해져야 하고 증세 문제도 적극적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최근 <한겨레>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부유세에 대한 지지율도 굉장히 높아졌다.

 

부유세란 명칭은 부자들이 무슨 죄인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부유세에 대한 국민 지지율은 높을지 몰라도 반대로 보수진영을 강력하게 단결시킬 위험이 있다. 그래서 부유세보다는 복지 관련 목적세를 신설하되, 소득이나 자산 관련 세금 등에 추가적으로 부과하는 식으로 가는 게 좋다. 실질적으로 부유세에 가깝더라도 명분은 사회통합을 위한 복지세로 가자는 거다.

 

자꾸 세금 문제를 부각시키면, 복지를 늘리는 것이 사회통합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발전전략이라는 취지가 흐려질 수 있다. 성장이냐 복지냐의 프레임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전략임을 이해시켜야 한다. 복지 전략에서 제일 중요한 점은 부자와 기업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된다는 거다. 세계화 시대에는 부자들이 더 돈을 많이 벌게 돼 있고 승자 독점 사회다. 수출 대기업이 더 많은 이익을 받고 따라서 그 사람들이 사회에 공헌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무너지는 거다. 이런 필요성을 부자들한테도, 기업들한테도 있다는 걸 인식시켜줘야 한다.

 

재원문제는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따져보면 복지확대란 안 해오던 지출을 갑자기 하는 게 아니다. 각 개인이 책임지고 지출하던 것을 사회적으로 모아서 사회가 다시 지출하는 방식을 택하는 거다. 그렇게 함으로써 취약계층 보호가 두터워지고 부담을 소득이나 자산이 더 많은 사람이 조금 더 지도록 하자는 거다. 무상급식을 보라. 누구나 다 먹던 밥이 아닌가.

 

의료의 경우에는 민간 보험료를 엄청나게들 내고 있는데 이걸 국가에 내면 훨씬 낫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내가 돈 내고 지출하던 돈을 사회에 내서 불안을 해소하자는 인식이 중요하다. 복지관련 증세도 한 항목씩 하면 큰 문제가 아니다. 10년동안 100조원 늘린다고 하면 연간 10조원씩 늘어나는 거다.

 

대외개방정책과 관련해서는 범 진보진영 안에서도 약간씩 인식과 전략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특히 거대 경제권과의 자유무역협정은 민주당이 여당일 때 내놓은 선진통상국가 전략의 일환이지 않는가. 민주당 이런 전략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진보연대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선진통상국가 기조는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특히 세계 금융위기를 겪은 상황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어떻게 봐야할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난 2007년 미국 민주당이 새로운 통상전략을 내놨는데, 투자자-국가 제소권과 의약품 판매의 특허연계 등을 철회하거나 완화하자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우리가 독소조항이라고 이야기했던 것들이다.

 

어떤 개방인지가 중요하다. 참여정부에서는 개방만 추구했지, ‘진보적 개방’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개방을 하면 거기에 부수적으로 지원정책이 들어갔다. 한-미 에프티에이를 하면서 기업들이 혜택을 입으면 법인세 5% 올리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기업이 반대하면 법인세 5% 올린만큼도 혜택이 안되는 거냐, 그러면 할필요 없는 것 아니냐 이런 논리로 접근해야 한다.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개방이냐, 아니면 특 정 집단에만 혜택이 돌아가느냐를 봐야 한다.

 

개방정책과 복지 요구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금융위기 이후 주요20개국(G20) 등에서 합의가 된 것이 국가의 정책공간 확보가 필요하다는 인식이다. 만일 우리나라의 주류 집단이 개방정책으로 금융허브, 공공서비스 민영화를 시행한다고 한다면 양극화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복지정책의 시행이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무역에 의해서 얻은 이익을 세금에 의해서 복지로 되돌리는 것은 간단하지 않을 수 있다.

 

복지와 함께 요즘 정치권에서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화두가 비정규직 문제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 또한 복지와 마찬가지로 ‘파이 나눠먹기’논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진보 진영에서 보다 현실적인 반박 논리가 나와야 하지 않겠나.

 

양질의 일자리를 좀 늘리더라도 양질과 저질 일자리의 격차는 존재한다. 부당한 격차를 어떻게 완화시키냐가 더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다. 노동시장 구조에 문제가 있다. 전통적 진보진영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유연성은 자원배분의 효율성인데, 이에 따른 노동자 삶의 불안정성을 어떻게 해결할건가를 고민해야 한다.

 

효율성을 살리면서 유연성의 부작용을 극복하려는 게 유연안정성 모델이다. 현존하는 모델 중에선 가장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진보진영은 그런 이야기를 잘 안한다. 진보진영은 사회보장만 이야기하고 보수진영은 유연성만 강조하는데 이런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유연안정성을 통해, 대기업 정규직은 해고에 직면하면 결사 투쟁하고 비정규직(및 중소기업근로자)은 찍소리도 하기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동정책은 진보적 성장정책의 핵심이다. 재정지출 중에서 엄청난 돈을 자본에 대해선만 배정하고 있다. 투자하면 감면해주고 이런 식이다. 삼성전자의 실효세율이 10%대라는 것은 기업 투자에 대한 지원이 그만큼 많다는 거다. 왜 정부가 자본에 대해서만 지원을 하고 노동에 대해서는 안하는지 생각을 해야 한다. 과거 70년대에 자본이 빈약할 때 만든 정책이 세계화가 이루어진 이후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자본이 아닌 사람에 지식에 대한 재정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일자리가 늘어나야 하는데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이 관건이라고 본다. 그런데 대부분 중소기업은 대기업 하청구조에 놓여 있어 기술을 발전시키거나 생산성을 향상시켜도 이윤이 남지 않는다. 결국 원청과 하청간의 공정거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몰라서 못하는 건 아니다. 안하니까 그런거다. 예컨대 하도급법 두번 이상 위반하면 정부 조달에서 아예 배제하면 되는데, 의지의 문제가 크다.

 

또 하나 중소기업 생산성이 올라가지 못하는 데는 땅값 문제가 있다. 안산에 가보면 국가산업단지에서 절반 이상이 부동산 임대업을 한다. 그게 돈이 남으니까 하는 거다. 이것도 해결책은 있다. 정부가 중소기업에 국가공단을 임대해주면 된다.

 

지금 경제분야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는 가계부채 문제다. 장기간 과잉유동성과 저금리 기조에서 비롯된 가계부채의 증가와 부동산 거품이 전체 금융시스템의 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진보진영에서도 해법을 내놓아야 할 것 같다.

 

최종 책임은 한국은행에 있다. 한은이 왜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기능이 마비됐다. 진보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돈을 풀어서 경제를 살려보겠다고 관료가 요구하고 한은이 바보처럼 쫓아갔다. 우리나라는 무시무시할정도로 다다익선의 논리에 빠져 있다. 이자율 싸면 좋다는 식의 논리다. 세상은 바뀌었는데 인식은 70년대 식이다.

 

국민의 정부 때부터 만들어진 금융허브정책은 당연히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의 과도한 이동과 자산거품이 통제가 안되면 나중에 정책을 쓸 방법이 없다. 버블이 커질수록 강도를 더 키우는 허들식 정책을 만들고, 거시건전성에 대한 최종 책임을 한은에 맡겨야 한다. 한은의 설립 목적을 물가안정에다 자산가격 안정으로 확대하고 정부가 손을 못대게 해야 한다. 부동산 가격이 꺼지면서 이자율이 올라가게 되면 가계 도산은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현재의 가계부채 770조는 지나치게 위험하다.

 

그런데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금융을 좀 적대시하는 느낌이 있다. 금융업 발전은 자본의 유연성 확대고 이는 시장경제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측면이 있다. 다만 노동유연성과 마찬가지로, 지나친 자본유연성은 즉 경제시스템의 불안정성을 초래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당국이 규제를 제대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