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부터 오른 엥겔지수…먹고살기 참 어렵다 [아침햇발]
- 수정 2025-04-22 18:30
- 등록 2025-04-22 16:38




정남구 | 경제산업부 선임기자
지난 2월7일 일본 총무성이 지난해 가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일본 언론들은 엥겔지수가 28.3%로 1981년 이후 43년 만에 최고치에 이른 것을 대서특필했다. 우리나라 언론도 이를 많이 소개했다. 일본인들이 먹고살기 어려워졌다고. 2023년부터 폭등한 일본 쌀값이 화제가 됐다.
엥겔지수는 가계의 소비지출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가난한 집, 가난한 나라일수록 높다. 나라 경제가 성장하면 지수는 낮아진다. 그런데 선진국 일본에서는 엥겔지수가 상승 반전한 지 꽤 오래됐다. 2인 이상 가계의 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와 외식비 지출액의 비율이 2005년 23.7%에서 바닥을 친 뒤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벌써 20년 전 시작된 일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가계동향조사에서 2인 이상 도시가구(2017∼2018년은 1인 이상 가구)의 엥겔지수를 계산해보니, 15년 전인 2010년 26.4%를 바닥으로 상승하고 있다. 2020년 28.5%로 올랐고, 지난해엔 28.8%로 올랐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2022년 29.0%까지 뛰었다가 조금 낮아져 있지만, 상승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일본보다 5년 늦게 엥겔지수의 상승 반전이 시작됐는데, 수치는 일본보다 높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엥겔지수 계산에서 식비는 식료품비(술 아닌 음료 포함)에 외식비를 포함해 계산했다. 밥을 사 먹는 일이 많아진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식재료를 사다 직접 조리하는 경우보다 식당에서 밥을 사 먹는 일이 많아지면 지수가 상승할 수 있다. 근사한 외식을 많이 해도 상승할 수 있다. 그런데 일본과 한국의 엥겔지수 상승을 식생활이 더 풍족해지는 흐름으로 보기는 어렵다. 소득 증가는 미진하고, 식료품·외식 가격은 대폭 오르면서 일어난 일이다. 한마디로 먹고살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소비자물가는 2010년부터 2024년까지 14년간 15.6% 올랐다. 같은 기간 식료품 물가는 35.1%나 뛰고, 일반외식 물가도 27.9% 올랐다. 가계 소득 형편을 가늠할 수 있는 노동자 1인당 명목임금(5인 이상 사업체, 일반노동자 현금 급여)은 7.2%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일본에선 최근 몇년간 엔화가 약세를 보이며 수출기업들이 큰돈을 벌어 주가가 급등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선 수입물가 상승으로 소비자물가가 급등하고 실질임금이 지난해까지 3년째 하락했다. 여기에 쌀값 등 식재료비가 특히 크게 오른 것이 엥겔지수를 끌어올리고 있다. 최근 달러가 흔들리면서 엔화 가치가 반등하고 있지만 2022년 하반기 수준이고, 2020년 말에 견주면 35% 넘게 떨어져 있다. 통화가치는 그 나라의 경제력을 반영한다.
우리는 최악의 기록을 써가는 일본의 경제지표를 보며 위로를 삼는 일이 많다. 그러면서 성장률의 하락 등 많은 지표가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에 눈을 감는다. 엥겔지수조차 5년 간격을 두고 상승 반전 흐름을 따라갔다는 걸 확인하면 우울해지고 만다.
2010년을 기준으로 2024년까지 우리나라 소비자물가는 32.2% 올랐는데, 농축수산물 물가는 62.8% 뛰고, 외식비 물가도 49.4% 올랐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실질임금이 하락하거나 제자리걸음을 했다. 사업체노동력조사를 보면, 2024년 1인당 실질임금은 2021년에 견줘 0.73% 떨어져 있다.
먹고사는 데 드는 돈이 늘어나는 것은 살림이 빠듯하다는 이야기다. 다른 데 쓸 돈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가계 소득 부진과 이로 인한 내수 침체의 악순환이 만성화돼가고 있다. 한국 경제는 그렇게 뒷걸음질을 하고 있다.
경제를 파탄 지경에 이르게 한 윤석열 정부가 ‘내란 대통령 파면’으로 자멸하면서, 3년 만에 대통령 선거가 다시 치러진다. 이런저런 장밋빛 경제 공약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나는 한가지에 가장 주목하고 싶다. ‘소비자이고 투자자이기 전에 노동자’인 이들의 삶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그들의 소득을 어떻게 늘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어떻게 덜어줄 것인지 누가 진지하고 솔직한 답을 내놓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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