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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23일자 추억의 글: 한국 자동차업계의 현황 보고

동숭동지킴이 2019. 7. 23. 10:25

<한국 자동차업계의 현황 보고>

오늘 낮에 자동차업계에서 오래 일해 오신 분들과 만나 자동차업계 사정을 조금 들었습니다. 혼자 알고 있기보다는 많은 분들이 같이 아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거기서 들은 내용을 소개합니다.

최근의 제 주된 관심사는 이쪽이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의 산업사회에 대한 관심은 계속 갖고 있어서 듣게 된 내용입니다. 체계적인 인터뷰를 진행한 것은 아니고 점심식사 하면서 들은 이야기라 다소 두서가 없습니다. 알아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1) 모기업과 협력업체 사이의 <갑-을 관계> 문제

* 모기업에서는 매년 1회 10%씩 CR(cost reduction 납품단가 인하)을 거의 강제적으로 시행하기 때문에 도대체 제대로 커가기가 힘들다.

* 협력업체에서 스스로 공정을 혁신한다든가 해서 원가를 절감하면, 그 이익을 거의 전부 모기업이 다 가져가 버린다. 경우에 따라서 협력업체에 그 이익의 절반을 공유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첫해뿐이다.

공정혁신 등 기술혁신을 하는 경우엔 4M(manufacturing, material 등)의 변화상황을 모기업에 모두 보고해야 한다. 그래서 그 혁신에 따른 이익을 모두 모기업이 가져가 버리므로, 기술혁신을 할 유인도 없고 성장할 기회도 없다.

기술혁신을 보고하지 않고 기술혁신을 추구해서 이득을 볼 수는 있지만, 만약 이게 발각되면 엄중한 처벌이 뒤따르므로 위험하다. (결국 기술혁신이 위험에 처해 있는 상황?)

특허기술을 창출하더라도 그에 대해 모기업의 검증절차를 거쳐야 하고, 그 검증을 거쳤다는 이유로 그 기술에 대한 특허는 모기업이 독차지한다. 따라서 협력업체가 애써 인력을 써서 기술혁신을 할 이유가 별로 없다.

* 협력업체에서는 자기 부품을 쓰는 모기업 생산라인에 1명씩 파견해서 모기업쪽과의 원활한 대화를 추구한다. (모기업 직원 접대도 포함.)

이건 마치 큰 할인매장에 납품업체 직원이 나가서 판촉활동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인데, 다른 선진국 공장에선 이런 경우가 없다. (협력업체의 불필요한 부담인 셈.)

협력업체의 부품 불량으로 라인이 서게 되면 협력업체에게 1분당 85만원씩 벌금을 물린다. (10분 서면 1000만원 가까운 돈.) 따라서 라인을 세우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업체가 현장에 파견된다.

* 외국 자동차 공장에 납품하는 한국 부품업체의 경우엔 처음에 납품하는 가격은 국제경쟁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국내 납품가격보다는 낮다. 하지만 5년간 강제적 C.R 없이 일정 가격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스스로 공정혁신을 할 유인이 생기고 안정적 수입이 가능하다.

2) 한국 모기업의 생산성과 수익 문제

* 생산성은 일본 도요타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도요타에서의 작업방식을 한국에 들여오지만, 노조의 반대로 도요타처럼 생산공정을 짤 수가 없다.

* 옛날에는 노조가 반대한 게 일리가 없지는 않았다. 부품이 일본에서처럼 정밀하지 않기 때문에 조립하는 데 더 힘이 들고 따라서 도요타처럼 빡빡하게 생산공정을 짤 수가 없었다.

* 하지만 지금의 부품 품질은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는데도, 노조는 과거의 관성 하에서 생산성을 떨어트리고 있는 것이다. 이건 북경현대차나 미국현대차의 생산성이 한국 현대차 생산성보다 30% 이상 높은 데서도 드러난다.

* 이런 낮은 생산성으로도 높은 수익을 올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협력업체를 쥐어짜는 것이다. 현대차의 정규직 연봉은 1억이지만 1차협력업체의 경우는 4천만원 정도며 그보다 낮은 경우도 있다.(만도 등 거대 협력업체는 예외.)

사내하청의 경우엔 모비스가 총괄하며 35% 정도를 떼간다. 따라서 사내하청 근로자의 임금은 현대차에서 지출하는 것에 비해선 낮지만 공장 밖의 협력업체에 비해선 그리 낮지 않다.

1997년 IMF 사태 이전에 기아 생산직 연봉은 2650만원, 관리사무직 연봉은 2630만원이었다. 그리고 1처협력업체의 임금은 2000만원 정도였다. 그런데 IMF 사태 이후 모기업과 협력업차 사이의 격차가 현저하게 커졌다.

1997년 무렵 현대차 생산직의 연봉은 미쓰비시 자동차의 1/2~2/3였다 (참석자에 따라 약간 이견이 존재.) 그런데 지금은 현대차 생산직의 연봉이 미쓰비시보다 절대액으로도 높다.

* 현대차가 수익을 올리는 또다른 이유는 소비자를 쥐어짜는 것이다. 기본모델에서 좌우 또는 전후를 약간 조정해 신모델이라고 내놓고는, 200만원씩 자동차 가격을 올렸다. 국내소비가 150만대라면 이것만으로 3조원의 수익이 발생한다. 다만 이런 방식은 최근에 들어와선 좀 어려워졌다.

* 폴크스바겐에서는 새로운 라인을 개발해 곧 투입할 예정인데, 그 라인에서 자동차가 하나 뽑아져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22초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 40초가 넘는다. 독일은 미국(및 한국)과 달리 협력업체들의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는 체제가 갖추어져 있다.


3) 한국 자동차 거대기업 정규직 문제

* 노동윤리가 상실되어 있다. 그런데 이건 근본적으로는 정치의 후진성, 사회전반의 불공정한 분배 문제 때문이다. 따라서 그걸 바로잡지 않고서는 노조의 문제점을 바로잡기 힘들다.

* 현대-기아차 정규직에서 골프 치는 생산직은 15% 정도(그보다 더 많다는 의견도 있음)에 이른다.

* 현대-기아차에서도 주말특근을 하고 협력업체도 주말특근을 한다. 그런데 현대-기아차의 주말특근의 경우엔 평상시 임금의 350%를 받지만, 1차협력업체 노동자의 경우엔 150~250%를 받는다.

* 만약에 주말특근 시간을 상정되어 있는 법안처럼 초과근로시간에 포함시켜 규제를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소생의 제안처럼 아르바이트생을 쓰는 경우엔 1주일 정도는 교육을 시켜야 하며, 절반 정도 정규직이 옆에서 같이 일해야 제대로 공정을 굴릴 수 있다. (독일 사례을 더 정확히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음.)
따라서 아예 주말특근을 없앨 가능성이 크다.

* 현대-기아차에선 어쩌다 사람을 뽑을 때는 수백배의 지원자가 몰리지만 협력업체의 경우엔 사람을 제대로 채우지 못해 외국인 노동자를 쓴다.

* 현대-기아차의 정규직 임금은 30%쯤 깍아야 하며, 협력업체 노동자의 임금은 50%쯤 올려야 한다. ( 이런 주장이 나오자 다른 분이 그게 어디 가능하겠느냐고 함.)

이상 식사하면서 메모하기도 뭣해 그냥 기억에 의존해 정리했습니다. 혹시 틀린 내용이 있을지도 모르니 논문 등의 전거로 이용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하하하.

그리고 혹시 수정보완할 내용이 있으면 여기에 댓글로라도 달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추가) 잊어버리기 전에 한두 가지 더 말씀드립니다.
* 김우중씨가 "노동자도 자동차 굴리는 세상이 되었으니, 노동 문제가 사라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대우조선에서 티코를 생산하면서 티코를 노동자들이 굴릴 수 있게 되었으므로 노동문제가 사라졌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만난 분이 나중에 김우중씨를 만나니 자기 말이 틀렸다고 했답니다. 대우조선 노동자의 부인이 "공돌이 마누라도 억울한데 티코 같은 (조그만) 차까지 타야 하는가"
라고 하는 말을 듣고는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대우조선 노동자들 중에 자기들이 생산된 티코를 굴리는 경우는 별로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 일본말에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의미의 경구가 없다고 합니다. 저도 일본어를 하지만 잘 모르겠는데, 혹시 일본어 전공자가 있으면 사실 여부를 알려주십시오. 이게 노동윤리 문제와 연결되는 것인지 아니면, "일본에선 사촌 사이가 우리처럼 가깝지 않다"는 의미인지 뭔지 모르겠습니다. 두고두고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