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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진보: 2014. 9.4 페이스북글 옮김

동숭동지킴이 2016. 9. 4. 21:27

<게으른 진보>

요즘 글을 너무 자주 쓰는 느낌입니다만,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게 눈에 띄었습니다. 많은 진보파에게 보이는 "싸가지 없음"만의 문제가 아니라, "게으름"의 문제도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9월 3일자 한겨레의 박노자 교수 칼럼이 바로 그러한 사례입니다. ...
( http://www.hani.co.kr/arti/SERIES/498/653876.html ) 그는 여기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구속노동자 숫자가 김영삼 정부 때의 구속 노동자 숫자보다 더 많다면서 두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자신의 블로그 등에서 사회주의자임을 공개천명(coming-out)한 박교수의 경우에, 김영삼-이명박-박근혜 정부와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그놈이 그놈인 셈입니다." 모두 타도되어야 할 대상이겠지요. 그러나 그런 그의 이념을 존중한다 하더라도, 사실을 왜곡해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저는 제 책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 (114쪽)에서 이런 구속노동자 숫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박교수에게 직접 전한 바 있습니다. 물론 바쁜 그가 제 책을 꼭 읽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 책은 그가 다루는 주제와 많이 관련되어 있으므로, 그냥 한번 들쳐보기만 해도 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바로 게으름의 문제입니다. 모두는 아니지만 상당수의 진보파는 이념이 앞서고 주장은 강한 반면, 과연 자신의 주장이 정확한지를 꼼꼼히 따져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꼭 제 책을 읽지 않더라도, 왜 그런 현상이 생겼는지 스스로 따져보는 노력을 해보면 알 수 있는 사안입니다. 게으르기 때문에 그렇게 "실사구시(實事求是)"하지 않고 주장이 앞서는 셈입니다.

제가 책에서 상세히 서술했습니다만,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구속자가 더 많았던 것은, 두 정권이 더 악독해서가 아니라 두 정권에 대해서는 더 많이 요구해도 들어주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속자의 상당수는 곧 석방되었습니다. 박교수는 통계의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게으름을 나타낸 것이지요.

박교수에 대해선 제가 이미 블로그에 글을 쓴 바 있습니다. "박노자 교수에 대한 아쉬움과 노동귀족 문제의 해법" (http://blog.daum.net/kkkwkim/219)이라는 글이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박교수에게 e메일로 보냈습니다. 혹시나 해서 두번이나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를 직접 만났을 때 그 e 메일 이야기를 했는데, 그는 메일을 받은 것 같았지만,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게 "싸가지 없음"이라고 하면 너무 지나칠까요

유명한 한국인 진보파 교수인 장하준 교수 역시 자료를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는 게으름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냥 자기 입맛에 맞는 자료를 적당히 주어모아 자기 주장을 멋있게 꾸미기 바쁘지요. 이에 대해선 제 책에도 썼지만, 제 블로그에도 올려져 있습니다.("장하준 논리의 비판적 해부" http://blog.daum.net/kkkwkim/115).

이념과 자기 확신이 강하니, 도덕적 우월감에 기초한 "싸가지 없음"과 더불어 "게으름"이 드러나는 셈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진보파는 콘텐츠(진정성, 비전, 전략전술)에서도 많은 결함을 갖고 있습니다만, 자세에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싸가지 없음"과 "게으름"도 바로 그런 예들입니다.

물론 한국의 많은 보수파도 싸가지가 없고 게으름니다. 하지만 남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진보파가 앞장서서 문제를 바로 잡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이왕 싸가지 문제가 나온 김에 모든 걸 총체적으로 반성하자는 뜻으로 이 글을 써보았습니다. 제 반성도 곁들이자면, 저도 이런 글 자꾸 쓰느라 정작 제가 해야 할 분야에서는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