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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서로 잘 통했던 친구의 추도사

동숭동지킴이 2018. 12. 17. 00:34

故 김기원 교수 영전에 바치는 追悼辭

친구야, 내말 들리나. 무슨 이런 황망한 일이 있는가. 베를린에서 뜻을 다하지 못하고 황급히 왔다는 소식을 듣고도 기다리다 그만 너가 가는 모습을 끝내 보지 못했구나. 모든 친구들이 한번만이라도 보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죽음을 앞에 두고 친구들에게 조차 그렇게도 의연해 지고 싶더냐. 아니면 구덕산 기슭에서 맺은 우리와의 모진 인연을 이 땅에서 끝내기가 그렇게도 싫어서였나. 매사에 신세지기 싫어하고 한 틈의 허점도 남기지 않으려는 너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마는 이건 진짜 너무 하지 않는가.

경남고 학창시절에 너를 처음 만날 때는 나는 그저 공부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단다. 특히, 이종희 선생이 혀를 두를 정도로 너의 독일어 실력은 정말 대단했지. 그러나 서울에 위수령이 내린 유신 독재의 대학 시절 같이 학교 조교를 하면서 보니 너는 공부만이 아니라 현실의 삶에도 진지하고 치열하다는 것을 알고 나는 정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단다. 사심 없이 맑고 깨끗하고 그러면서도 정열적인 너의 영혼에 나의 삶이 대비되어 스스로 미안해지기까지 했단다.

미인박명이라더니 너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못난 놈이 혼자 남아 이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가. 이제 너의 사심 없는 조언이 필요할 때면, 관악산에 30년 이상 함께 뿌려놓은 너의 발자취를 찾을 수밖에 없구나,

내가 지랄 같은 세상을 비판을 할 때마다 너는 ‘나와는 다르다’고 말해왔지. 너는 재벌을 모질게 비판하지만, 그것은 재별이 미워서가 아니라 재벌을 보다 잘되게 하기위한 것이라고, 너는 좌우가 불균형인 이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이 사회가 미워서가 아니라 좀 더 인간적인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라고. 무엇보다 비판을 하려면 이세상의 모든 것을 따뜻하게 사랑해야 한다고. 그래야 실천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무모한 투쟁과 대안 없는 비판은 무의미하다며 항시 나를 잡아당기며, 우리사회 합리적인 대안을 찾는 것이 우리 지식인의 임무라고 말해왔지. 그것이 바로 정치인과는 다른 점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지.

우둔한 나에게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설명하면서 진보와 보수라는 기준과 별개로 개혁과 수구라는 구분이 필요하다며,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국가와 시장의 역할을 보는 관점의 차이라면, 개혁과 수구는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한 경쟁, 그리고 국가의 민주성과 효율성을 보는 입장의 차이라고 설명했지.

너는 열심히 진보와 보수의 축과, 개혁과 수구의 축을 그리며, 한국사회의 올바른 미래 지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통일의 축이 하나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지, 진보도 보수도 우리사회 실정에 맞는 개혁을 통해서만 한반도 통일의 그날을 바라볼 수 있다고 했지.

그리고는 통일 경제를 구상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독일로 떠났지. 그 동안 나는 좋은 통일 경제 구상을 다듬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단다. 너라면 충분히 그러한 구상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었지. 아니 너가 아니면 현실성 있는 구상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단다. 너가 없는 동안 나 역시 북한 종교와 사상을 한번 살펴보기로 마음먹고 있었단다.

친구야, 좁은 경제학을 넘어 보다 넓은 통일 경제에 뜻을 펼쳐 보인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너는 이미 황망히 하늘나라로 가버렸구나. 너가 그런 뜻을 품고 독일을 간다는 것만으로 너무도 반갑고 기뻤단다. 안개 속에 있는 통일의 길은 너 같은 통일 인재들을 긴급하게 부르고 있는데.

학교 안식년 1년 가려는 것을 좀 더 좋은 통일 경제 구상을 다듬어 왔으면 하는 마음에 1년을 갈 가 2년을 갈 가 망설이고 있는 너를 보고, 나는 1년은 너무 짧다며 마지막 공부니 한 2년 가는 것이 좋겠다고 힘써 권유했는데, 그것이 너를 죽음으로 몰아붙인 것 같구나. 그 길이 마지막길이 될 줄을 꿈에도 몰랐다. 장기간 베를린 체류가 너의 건강에 무리라는 것을 내가 왜 생각하지 못했을 가. 말려서야 했는데.

나는 그 때만해도 기원이가 독일을 갔으니 무조건 2년 뒷면 새로운 통일 경제의 청사진이 생길 것 같다는 기대에 내가 눈이 멀었나 보다. 무엇이든 잡으면 몸 생각 않고 고집스럽게 실천하는 너를 조금이라도 고려했더라면 이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았을 텐데. 정말 후회스럽다.

그래 지난날을 생각해보니 나는 너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받기만 했구나. 내가 너에게 해준 것도 별로 없고 그저 원망스런 세상에 대해 죄도 없는 너에게 투정만 부린 것 같아 정말 미안하구나.

친구야, 나에게는 너와의 만남은 정말 행운이었단다. 농담 삼아 윤가는 내가 아니었으면 몇 번이나 빵 잡이가 되었을 거야 하며 언제나 나의 우둔함과 무모함을 나를 깨우쳐 주었지. 그래 친구야, 너의 미완성 교향곡을 남아있는 친구들이 서툰 변주라도 흉내 내볼게. 이제 편히 잠들게나.
너는 우리의 친구였지만 우리 친구의 삶에 스승이었단다. 너무도 사랑하고 존경했다. 그래 잘 가거라.

추도식(2014. 12.9)에서 친구 윤승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