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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그 김 교수가 8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뼛속까지 진보 경제학자였던 그가. 개인 블로그 문패도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로 달았을 정도였다. 한때 마르크스 경제학에 심취했고, 전공까지 했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보수 성향의 나와 생각이 많이 달랐다. 그는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의 무상급식에도 일조했다. 부잣집 아이에게 무상급식을 하는 게 맞느냐는 나에게 “어허, 애들에게 따뜻한 밥 먹이자는 데 왜 이리 말이 많을까”라며 웃어넘겼다. 부잣집 아이에게도 밥을 먹여야 부잣집이 세금을 많이 내도 억울해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재벌개혁도 마찬가지였다. 재벌체제를 황제경영이란 말로 압축했다. 근대적 개혁을 해야 할 전근대적 시스템이라고 했다. 오너경영 때문에 재벌이 이만큼 큰 거 아니냐고 반박하면 “공은 인정한다”고 수긍했다. 문제는 무능하고 부패한 오너가 경영을 전횡할 때 견제할 장치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가 헌신한 소액주주운동은 그 산물이었다. 재벌이 너무 커져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비판도 했다. 법 집행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게 그 증거라고 했다. 재벌과 오너의 범죄는 가중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다. “나는 친재벌”이라는 말도 자주 했다. 재벌을 거듭나게 만들어 제대로 살리자는 게 어떻게 반재벌이냐고 반문하면서.
같은 잣대를 대기업 노조에도 갖다 댔다. 진보로선 이례적으로 한진중공업 노조를 비판했다. 대우자동차의 GM 매각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우차 노조가 GM 인수 반대와 국유화 투쟁을 벌일 때도 전면에 나서서 노조를 비판했다. 지난해 진주의료원 폐업 때도 “의료원장의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불필요한 인력을 많이 끌어안고 있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공의료가 진보의 목표이지만, 경영 효율성을 높이려는 노력 역시 진보의 책무라면서. 노조가 권력을 가진 게 문제가 아니라, 권력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게 문제라고 했다.
이처럼 그는 시시비비를 정확하게 가리려 애썼다. 그래야 현실에 발을 디딘 정확한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열린 진보’였다. 보수를 긍정했다. 진보와 함께 사회를 움직이는 두 축이라고 인식했다. 두 진영의 극한적인 대립을 우려한 까닭이다. 타도 대상이 아니라 공존 대상이라고 했다. 오죽했으면 경제학자가 보수는 양, 진보는 음이라는 음양조화론까지 들고나왔을까. 반면 개혁과 수구는 같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비판한 진보도 ‘수구적 진보’였다. 대기업과 공기업의 거대노조는 여기에 해당된다. 그가 비판한 보수 역시 수구적 보수였다. 살아 있었다면 최근에 터진 대한항공 3세의 ‘땅콩 회항’ 사건은 여기에 포함시켰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