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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 교육감을 도지사가 아니라 '교육대통령'으로 !

동숭동지킴이 2013. 7. 10. 14:53

 

<김상곤 교육감을 도지사가 아니라 '교육대통령'으로 !>

7월 10일자 조선일보에 "안철수, 김상곤 경기교육감에 도지사 출마 타진"이라는 기사가 크게 실렸습니다. 기사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내년도 지방선거에서 김교육감이 교육감 자리는 포기하고 안철수측 경기도 지사 후보로 나서줄 것을 제안한 모양입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10/2013071000234.html

기사에 따르면, 이런 제안에 대해 김교육감 측이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전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김교육감측이 현명한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김교육감은 교육감으로서 해야 할 큰 일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김 교육감은 이른바 진보개혁인사로서 정-관계에 진출해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고 훌륭한 성과를 거둔 흔치않은 사례입니다. 유명한 진보개혁인사들 중에 망가진 사람이 어디 한둘입니까. 김교육감은 그저 과격한 주장만 앞세운 '관념적 진보파'가 아니라, 온유한 인품을 갖추면서 진보를 현실 속에서 실현하려고 애쓴 '현실적 진보파'였습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는 서울대학교 학생 시절엔 학생회장으로서 군사독재에 반대했고, 대학교수 시절엔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약칭 민교협)와 교수노조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사회민주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 처음 교육감에 출마했을 때는 "무상급식"을 주요 이슈로 제기함으로써, 우리 나라에서 그동안 거의 터부시되어 왔던 "복지확충"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보수파 출신인 지금 대통령마저 복지확대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우게 된 데에는, 김 교육감의 선거과정과 당선 이후 무상급식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쟁이 끼친 영향이 지대했습니다.

또한 김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해 그 동안 군사문화 속에서 거의 무시당해왔던 학생들의 인권의식을 일깨우는 데에도 선구적 역할을 해왔습니다.

게다가 그의 성과는 이명박 정부, 김문수 경기지사 그리고 수구언론의 방해와 탄압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더욱 값진 것이었습니다. 그는 교육부와 검찰의 고소에 따라 교육감 지위를 잃을 위험까지 감수하면서도 그가 해야 할 일을 밀고나갔습니다.

그의 이런 놀라운 성과 덕분에 2007년 대선 패배 이후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야권이 생기를 되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서는 서울, 강원, 전남북 등 각지에서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는 쾌거를 만들어내었습니다.

 

다만 야권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자 정말로 자기들 자신이 잘 해서 승리한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렇게 자만한 탓에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도리어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김교육감의 노력과 성과를 제대로 이해하고 살리지 못한 것이지요.

따라서 요새 정치권이 그에게 다시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니 기존 정치권은 그에게 많이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안철수쪽도 그에게 내년의 경기지사 선거 출마를 제안한 모양입니다.

안철수 세력도 정치세력인 이상 내년 선거에 출마할 인물을 영입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불가피합니다. 더구나 김 교육감은 정치권 모두가 관심을 갖고 있는 뛰어난 인물이고, 경기지사는 우리 정치의 센터인 수도권 정치와 관련되는지라 안철수측이 그와 접촉했겠지요.

그러나 이 제안은 '정치공학(political engineering)'에 지나치게 기울어진 제안이라고 생각됩니다. 자기편이 이기기 위한 술수에 집착한 느낌이 나는 것이지요. 물론 정치에서 정치공학은 '필요악'이고, 따라서 그걸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큰 정치'에서는 정치 공학 이전에 '대의명분'과 '정치도의'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정치에서 도(道)와 술(術)을 논한다면, 술 이전에 도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대의명분과 정치도의"의 관점에서 볼 때 김교육감의 경기지사 출마는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왜 교육감을 하던 인물이 갑자기 도지사에 출마해야 하는지 국민들에게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지요.

큰 정치에서는 한 문장으로 자신의 정치활동 목적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힘들고 구질구질하게 설명해야 한다면, 그건 첫 출발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예컨대 링컨은 "남부분리 반대 및 노예해방"을 내걸었고, 김대중은 "지역주의 반대 및 대중경제"를 내걸었습니다. 노무현은 이들보다 충격도는 약하지만 그래도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이라는 자기 나름의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정동영이나 문재인이 혹시 뭘 내걸었는지 생각나십니까. 그들은 도대체 자기 나름의 충격적인(impact 있는) 구호를 내걸 만큼의 내공(Force)을 갖추지 않았고, 그 때문에 패배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김교육감이 도지사로 나갈려고 한다면, 도대체 그 이유를 설명하기가 힘들고 따라서 성공하기 힘듭니다.

 

교육감으로서 할 일을 다 끝내서 이제는 교육분야 이외에서 할 일을 해보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될까요. 국민들은 우선 교육감 일이라도 제대로 마무리지으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교육감 일은 도지사 일에 못지 않게 중요한, 아니 우리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어쩌면 더 중요한 일입니다. 따라서 교육감보다 도지사가 더 중요해서 그리로 방향전환다는 것도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게다가 김교육감이 안철수와 손잡고 도지사에 출마하는 것은, 그와 친분관계가 있어왔고 그를 뒷받침해왔던 민주당(도의원 포함) 인사들과의 정치도의를 저버리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사적 친소관계에 억매어 공적 대의를 무시해서는 안되지만, 도지사되는 것이 그런 공적 대의에 입각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어보입니다.

요컨대 김교육감의 도지사 출마는 "대의명분과 정치도의" 면에서 해서는 안될 일입니다. 사실 안철수 측에 대해 가혹하게 평가를 내린다면, 그들은 바로 이런 "대의명분과 정치도의"에 대한 개념이 약한 집단입니다. 그래서 제가 예전에 안철수는 양대정당에 실망한 '안철수 현상'을 담기에는 너무나 작은 그릇이라고 쓴 바 있습니다.

 

대선에 출마한 이후 그의 행적을 잠깐 보십시다. 대의명분(大義名分)이 약하니 '의원 정수 축소'와 같이 잘못되고 쪼잔한(小義名分?) 정책을 주요 정책이랍시고 내걸었던 것이지요. 물론 사람이라 실수는 할 수 있지만, 그는 이 정책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난 후에도 계속해서 고집하는 쪼잔함까지 보여줬습니다.

 

그러니 단일화에 합의해 놓고도 이런저런 '땡강'을 부렸습니다. 또 지지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지지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한 '애매모호한' 자세(아래에 첨부하는 이재성기자의 표현에 따르면 "같기도 정치")를 취했던 것이지요. 단적으로 대선투표 당일 날 미국으로 날라버린 행동을 보십시오.(이건 쪼잔한 "토라짐의 정치"라고나 할까요.)

 

대선 이후를 봅시다. 노회찬이 억울하게 의원직을 상실한 자리를 낼름 차고 들어가는 것도 결코 대의명분과 정치도의에 입각한 정치라고는 할 수 없지요. 역시 쪼잔함의 정치이지요. 물론 대부분의 정치인이 이 쪼잔함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이와 관련해 안철수를 특별히 비난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그가 많은 국민들이 생각하는 큰 인물(메시아? 대통령급?)이 아니라는 점만 확인하면 충분합니다.
 

뚜렷한 대의명분을 갖추지 못한 정치가는 이쪽저쪽 눈치를 봅니다. 그리고 이런 기회주의적 행태에 대해 극단을 배제한 중도적 정치라고 착각합니다. 중도적 정치란 무소신이 아니며, 중도적 소신을 위해선 강력한 투쟁도 불사하는 자세입니다. ('중도의 정치'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써 볼 생각입니다.)


요컨대 김 교육감은 쪼잔한 안철수 세력이 담기에는 너무 큰 그릇입니다. 그리고 교육감으로서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의 정책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무상급식', 인권조례' '혁신학교'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중에서 '무상급식'과 '인권조례'는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 셋 중 가장 중요한 '혁신학교'와 관련해선 아직 초보 단계입니다. 눈치밥 먹이지 않고 인권 지키는 것은 교육의 전제이지 그게 교육의 본체는 아닙니다. 교육의 본체와 관련된 '혁신학교'정책에서는, 김교육감은 양적으론 혁신학교를 확대시켜왔지만 질적으로는 아직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 아직 많습니다.


그리고 2010년 선거에서 진보교육감들을 대거 당선시키긴 했지만, 아직 교육계가 진보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니 진보교육 이전에 상식적 교육개혁도 수용하고 있지 않지요. (제 이론에 따르면, 상식적 교육개혁은 "X축의 진보-보수 구분"과 별개로 "Y축의 개혁-수구 구분"의 문제에 속합니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서울의 곽교육감이 중도하차함으로써 진보 교육감 전열이 흐트러졌습니다. 따라서 김교육감은 진보-개혁 전열을 재정비하고, 그리해 교육계의 혁신을 양적으로 질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더욱 애써야 합니다.

김교육감이 할 일은 경기지사 같은 국지적 일이 아니라 실질적인 "교육대통령"이 되어 우리나라의 교육 전체를 바로잡는 일입니다. 그가 안철수측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하니 다행입니다만, 앞으로 교육계를 바로잡는 일에 가일층 매진해 주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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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안철수에 대한 비판 글 소개>

이왕 안철수에 대해 몇 가지 점에서 평가를 내린 형편이니, 7월 3일에 한겨레의 이재성 기자가 인권연대 홈페이지에 쓴 글을 아래에 덧붙여 소개합니다. 이 글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있을 것이고, 저도 이 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는 아닙니다.

 

특히 이 기자의 글은 진영논리를 다소 지나치게 강조하는 면이 있습니다. 여야를 다 비판하는 것이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요. 안철수의 진짜 문제는 여야를 다 비판하는 데 있다기보다는, 자기 나름으로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알맹이'가 없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기회주의를 중도의 정치로 착각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안철수 세력이 호남을 넘보는 것에 대해 이 기자는 혹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깃발만 꼽으면 당선되는 호남지역에서 의미 있는 경쟁세력이 등장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걸 비난할 이유는 없다고 보입니다. 다만 문제는 호남에서 몇 자리 얻는 데 안주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지요.

 

한편, 이 기자는 안철수가 정치파에 들어온 이후 유일한 업적은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한 것 하나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안철수의 이 양보는 잘한 결정이지만, 그 결정에 이르게 된 내막을 알게 되면 다시 한번 안철수에게 실망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 내막을 여기서 굳이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어쨌든 이 기자의 글은 일단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도강박증', '범생이 정치' 등 재미 있는 표현도 있습니다. 저 자신 안철수란 인물에 대해 이리저리 들은 바도 있고 나름대로 이따금씩 평가도 해왔습니다만, 그 인물보다 오히려 그의 노선이 갖는 의의와 한계에 대해 기회가 되면 생각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안철수의 정치가 의심스런 이유> :  이재성/ 인권연대 운영위원, 한겨레신문 기자

... 오늘은 정치(인) 얘기를 하려고 한다

20년 가까이 신문사에서 일하면서 정치부 근처에는 가보지도 않은(혹은 못한) 자가 단도직입으로 정치(인) 얘기를 하려는 이유는...절박해서다.

달을 가리키는 데 달을 쳐다보기는커녕, 그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집단이 앞으로도 별 문제없이 제 1당을 차지하는 기괴한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것 같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을 동원한 총체적 부정선거를 저질러 놓고도, 국면 전환을 위해 불법으로 불법을 덮어놓고도, 이 땅의 민주주의를 궤멸적 나락으로 몰아넣고서도, 뻔뻔하게 권력을 유지하는 몰상식한 집단에 맞설 수 있는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능력도 방향감각도 상실한 민주당은 말할 것도 없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돼버린 진보정의당, 국민과의 소통을 포기해버린 듯 한 통합진보당, 여전히 사상 투쟁에 몰두하는 이론가 집단으로 비치는 진보신당, 그리고 문제적 인물, 안철수에 이르기까지. 할 말이 많지만 오늘은 일단 안철수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가 안철수 의원에게 처음 실망한 것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그가 국회의원 정수 축소 공약을 정치개혁 프로그램으로 내놓은 순간이었다. (그 전까지는 그가 좋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야권연대의 구심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문재인이든 안철수든 누가 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둘 다 부족하지만 최악만 피하면 된다는 심정이었다) 조중동의 정치냉소 프로젝트에 오염된 안철수식 정치개혁 구상의 유치함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비판이 이뤄졌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두 번째 실망은, 야권연대 선언 이후 공동 선거운동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안하는 것 같기도 할 때였다. 나의 마음속에는 이때 벌써 18대 대선의 조종이 울렸다. 안철수는 특유의 ‘같기도’ 신공을 유감없이 발휘했는데, 이게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줄을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때 알아챘을 것이다.

세 번째 실망은 지난 4월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그의 선택이었다. 삼성 엑스파일 사건을 폭로한 죄(!)로 노회찬이 의원직을 잃자마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노회찬의 지역구를 노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노회찬을, 자력으로 지역구에서 의원 배지를 달 수 있는 몇 안 되는 진보정치인 노회찬이 오랫동안 공들여온 그 지역구를, 이 땅의 거악에 맞서 싸우다 억울하게 의원직을 앗긴 노회찬의 자리를 노리는 후각은 차라리 정글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노회찬의 사전 양해를 둘러싼 잡음은 양념에 불과했다. 이 때 처음으로 안철수가 미워졌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많은 필자들이 분노를 표한 바 있으니, 이 정도로 하고 넘어가자.

네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대목은, 지역주의(지역감정)를 대하는 그와 그의 참모들의 태도였다. 애꿎은 진보정의당 의석을 빼앗지 말고 부산 영도로 내려가라는 여론에, 그들은 그건 노무현의 길이지 안철수의 길이 아니라고 말했다. 노무현의 아류가 되고 싶지 않다는 선언이었다.

독자적 아이덴티티가 중요한 정치인이니까 여기까진 그렇다 치자. 정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당선 이후였다. 그는 마치 민주당이 경쟁자인양 행동하고 있다. 광주에 공을 들이고 어쩌고 하는 기사가 줄을 이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지만 의원 빼가기 논란까지 있었다.

백번 양보해서 정치적 동진(경상도 공략)은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대목에 대해서는, 이 나라 정치에서 지역주의가 갖는 함의에 대해서 기초적인 문제의식조차 부족한 정치인이군, 하는 정도로 넘어갈 수 있겠지만, 야당의 텃밭인 광주를 넘보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얘기다.

민주당이 헤매는 틈을 타 무주공산에 깃발을 꽂겠다는 심보 아닌가. 노원을에 이어 광주까지, ‘손 안대고 코푸는 정치’가 안철수의 새정치인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한마디로 안철수는 군자의 도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잠깐 덧붙이자면, 나는 지역주의가 갖는 정치적 함의에 대해 다른 기회를 통해 의견을 비친 바 있다. 안철수는 호남이 자신을 지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정말 모를까. 비슷한 컨셉의 정치인인 문국현이 대선이 지나고 한순간에 사라진 것은 그가 서울 태생이기 때문이다.

그에 견줘 안철수의 인기가 여전히 어느 정도 유지되는 건 그의 고향이 가진 정치적 자산 때문이다. 그 정치적 자산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데 써달라는 민심의 바람을 모른다면 아둔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지역주의는 이토록 강력하게 살아 움직이는 괴물이다.

안철수는 중도와 상식, 합리(의 이미지)를 표방한다. 지역주의의 피해자로서 수십 년간 단련된 호남은 정치의식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고 합리적이다. 이념에 관계없이 새누리당의 횡포를 제어할 수 있는 인물을 지지해왔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힘이 여기 있다. 화투로 치면 굳은자인 셈이다. 안철수가 호남을 노리는 건, 스펙 좋은 둘째 아들이 밖에 나가서 돈 벌어올 생각은 하지 않고 갑자기 낙향하더니, 첫째가 농사짓던 땅을 빼앗으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첫째가 가진 땅으로는 식구들을 먹여살릴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안철수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간철수’라고 부른다. 아마도 ‘간을 본다’는 비아냥이 포함된 뜻이 아닐까 싶다. 자기 생각을 명확히 말하지 않고 애매하게 넘어가는 화법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시점에서 그가 보여준 눈치보기 행보 때문에 이런 불명예스런 별명이 생긴 것 아닌가 싶다. 안철수는 이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을 비난할 게 아니라 자신을 되돌아보는 거울로 삼아야 한다.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건만 해도 그렇다. 사건이 일어난 지 무려 6개월이 지난 요즘에야 그는 비로소(!) 이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그동안 뭔가 불분명하다고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진보와 보수 모두로부터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도 강박증’ 때문일까.

국정원 사건처럼 명백한 국기 문란 사건에 대해서조차 발언을 아끼는 것이 중도인가. 중도의 깃발을 내걸려면 그 깃발을 선명하게 높이 들어 올려야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눈치를 보며 그 중간 정도만 올리겠다는 전략이 과연 중도인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정치에 대하여 발언하지 않는 정치가 상식의 정치라고 할 수 있을까.

안철수는 늘 너무 늦게 최소한의 정답만을 말하려 한다. 먼저 이야기하고 사람들을 끌어가려 하지 않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적당한 지점에서 수습한다. 자기주장을 앞세우지 않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게 뭐가 나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지도자로서는 결격사유다.

비교적 명백하게 사회적으로 의견이 갈려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남의 의견이 이미 거의 다 나와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명백한 의견을 밝히길 주저한다. 정치적으로 자기 확신이 부족하거나(국회의원 정수 축소 공약으로 한번 크게 데었기 때문일까), 혹은 눈치를 보는 것이다.

나는 이걸 범생이 정치라고 부른다. 누구로부터도 욕먹기 싫은 공부 잘하는 범생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정치와는 맞지 않는다. 이런 부류의 범생이들은 여의도에 차고 넘친다. 정치는 자기 생각을 이야기 하고 그 생각을 중심으로 사람을 모으는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건 이미지 정치다. 안철수는 (자신의 좋은) 이미지 정치에 안주하고 있다. 안철수처럼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고 욕먹지 않는 방식으로 그걸 주워담는 데 능했던 사람이 또 있다. 그 역시 이미지 정치의 대가다. 너무 늦게 최소한의 정답만을 말하는 사술로 대통령이 된 사람은 그 사람 하나로 충분하다. 대통령이 되고나면 최소한의 정답조차 내놓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 그런데 안철수는 왜 정치를 하려고 할까. 안철수 같이 바른 사람이 정치를 하면 거꾸로 선 이 나라 정치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부추긴 사람이 주변에 많았을 것이다. 전국적으로 인기가 있어서 출마도 하기 전에 지지율이 고공 행진했으니 마음이 움직였을 것이다.

실제로 여론도 그러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전, 여의도 밖의 정치가 만개하던 시점이었다. 나도 여의도 밖의 정치에 기대를 걸었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안철수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도 그런 기대를 가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안철수 주변 사람들에 대해 미안한 감정이 든다.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나. 열심히 올라갔더니 이 산이 아닌데.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 정치가 좌우로 편을 갈라 싸워왔다며 그 틀을 뛰어넘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법륜(스님)의 화두를 붙들고 있다. 이것이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안철수 새정치의 요체다. 추가된 게 있다면 ‘지역 대신 계층’을 중시하겠다는 것 정도? 특별한 이념이나 강령이 있다기보다는 기존 정치와는 다른 길을 갈 것이고, 그것은 내가 안철수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묵시록에 가까운 영역에, 안철수의 새정치가 존재한다.

여기서 질문 하나. 해방공간 말고, 이 나라 정치가 좌우로 편을 갈라 싸운 적이 과연 있었나. 자유주의조차도 좌파라고 공격받는 전근대적인 풍토에서 좌우 구분이 무슨 소용 있나. 철지난 이념싸움 하지 말라며 먼저 이념싸움을 거는 세력은 새누리당이다. 엔엘엘(NLL) 논란을 보라. 종북이라는 매카시즘적 선동으로 모든 이슈를 덮어버리는 우파의 고전적 수법 아닌가.

해방 이후의 대한민국 정치는, 굳이 말하면, 상식과 몰상식의 싸움, 지리적으로는 좌도와 우도의 싸움이었다. 허나, 백두대간을 타고 형성된 우도의 산세가 너무 높아 제대로 한번 붙어보지도 못한 싸움이었다. 더구나 둘이 같이 싸우면 항상 좌도가 욕을 먹는 구도다. 대다수의 언론이 우도 편이기 때문이다.

혹은 싸잡아 욕을 하는 것으로 정치냉소를 부추기고 실리는 우도가 챙기는 구도라고 할 수 있다. 안철수식 정치관이 이 나라의 정치모순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오류는 여기서 발생한다.

싸잡아 욕하는 순간 기득권의 편에 서게 되는 마법. 이것이 앞서 말한 조중동의 정치냉소 프로젝트다. 국회의원 정수 축소와 중앙당 폐지라는 대중추수적 공약이 나왔던 배경도, 이 싸잡아 욕하기 프레임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노동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어렵게 모신 최장집 교수가 노동 중심 정당을 이야기하니 차마 입을 막지는 못하겠고, 노동이 전부는 아니다, 많은 것 중의 하나일 뿐이다, 라고 애써 축소하기 바쁘다.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지켜본 안철수식 새정치에 대한 관전평이다. 그가 정치에 뛰어든 이후 유일한 업적은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한 것밖에 없다고 하면 심한 말일까.

써놓고 보니 거칠다. 앞이 보이지 않는 한국 정치에 절망한 40대 아저씨가 넋두리를 늘어놓았다고 치부해 주시길. 너무나 답답해서 이민을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그냥 이 땅에 비비고 살아야 하는 평범한 서민이 울분을 토해냈다고 여겨 주시길.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대안 세력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건전한 토론이 이 공간에서 이어진다면 말석이라도 채울 의향은 있다. 아직은 이민 가고 싶은 마음보다는 이 나라를 고쳐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하니까.

이재성 위원은 현재 한겨레신문사에 재직중입니다